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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ss Jun 18. 2021

항상 나쁜 일만은 없다.

자궁내막증 수술 그 이후 .....


지난 주 목요일부터 시작한 생리가 3일만에 뚝 하고 끝났다.

보통 생리가 찔끔찔끔 묻어나오는 것까지 포함하면 6일은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끝나니,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면생리대를 쓴 지 약 10년 가까이 되서, 쓴 양으로 ‘생리양’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번에는 몇 개 되지도 않는다.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인가?’

'어, 그러고보니 아랫배가 특히 왼쪽이 한 번씩 쿡쿡 쑤시는데...' 또 난소에 또 문제가 있나 싶은데, 산부인과를 가자니 거부감부터 든다.

산부인과 진료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여의사든 남의사든 나의 소중이를 쫙 벌어진 자세로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초음파를 본다고 막대기같은 기계를 휘휘 둘르는 그 경험은 불쾌함 그 자체이다.

6년 전 동네의 작은 산부인과에 정기검진 차 가서 초음파를 봤는데 왼쪽 난소에 3cm의 혹이 보인다고 했다. 엄마에게 이야기 하니 엄마는 조금 더 큰 병원을 가보자 했고, 우리는 강서 미즈메디로 향했다. 거기서도 의사의 소견은 같았다. 3cm의 혹이 있고, 복강경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수술을 할 것이면 대학병원으로 가야지.’ 하고 부리나케 예약을 하고, 이대목동병원으로 갔다. ‘초음파의 신’ 이라는 별명을 가진 의사선생님은 나를 진찰 하더니, 난소에 붙은 3cm의 혹은 단순한 물혹이 아니라, 자궁내막증*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내가 이해한 바, 자궁 내막증이란 생리할 때 떨어져나가야 하는 자궁내막의 조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궁 내 다른 장기에 붙어, 생리 때 마다 그 장기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이 내막조직이 난소에 붙은 것이고, 생리를 할 때마다 이 조직이 난소에 영향을 끼쳐, 결국 난소가 잡아먹힐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덧붙여 의사는 자궁내막증은 난임의 원인으로 남자친구가 있으면 어서 결혼을 해 임신을 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당시 28살의 나이, 아직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이제 겨우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커리어의 초석을 만들어 가는 중이었는데, 새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이 3cm의 혹은 그 뒤로 나의 인생을 모두 흔들어 놓았다.

의사의 진단에 우리 집은 하루 아침에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한 번, 그리고 앞으로 임신이 어려울 수 있으니 30살이 되기 전에 어서 빨리 결혼을 해 임신을 하라는 말에 한 번.

부모님의 억장은 그렇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의 미래는 의사의 말 두마디에 결정되었다.

먼저 다니던 일터에 가서 ’제가 급하게 수술을 받게 되어, 이번 달 까지만 하고 못나올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내 몸이 아파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인데도, 그만두는 말을 하는 나는 어찌나 죄인같던지…

그리고 그 당시 러시아에서 졸업만을 남겨놓고 유학을 하고 있던 남자친구(현재 남편)에게 임신이 급해진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때 우리는 영상통화를 할 때 마다 ‘우리가 3년 후에도 안 헤어진다면, 결혼하면 좋겠다^^’ 정도의 풋풋한 사이였지, 결혼을 약속할만큼 진지한 사이는 아니였다. 물론 은창이가 아직 유학생 신분이었고, 취직이 불확실하니 결혼을 위한 준비가 하나도 안되어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다니던 직장의 일을 마무리하고, 한 달 뒤 의사의 말대로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전신마취를 하고 받는 수술이라, 두려움이 컸지만 부모님 앞에선 씩씩하게 굴었다. 복강경 수술은 5시간동안 진행되었고, 그 결과 내 양쪽 난소에 붙어 있던 내막 조직이 잘 제거되었다. 수술 후에는 피주머니를 통해 수술 후 몸속에 남아있는 혈류를 빼내었고, 경과가 좋아 5일 후에 퇴원하였다. 퇴원 후엔 ‘비잔’이라는 호르몬제를 6개월간 복용해 강제폐경을 시켜 자궁을 쉬게 해주었다. 이렇게 ‘자궁내막증’의 수술파트는 끝이났고, 그 후 나는 임신을 위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갔다.

6개월간 비잔 복용을 마치니, 은창이가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은창이는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나와 만나 좋다는 모텔에 가서 임신시도를 했다. 참 아이러니했다. 수술 전 우리는 그렇게 ‘피임’에 열성을 다했는데, 이제는 ‘임신’을 하려고 이렇게 애를 쓰다니.

임신과 취업을 위해 모두 노력하던 은창이는 다음 해 1월 취업이 되었고 우린 꽃피는 5월 많은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오래토록 나는 나만 ’재수없게’ 자궁내막증에 걸려 직장도 잃고, 건강도 잃고, 미래도 잃었다며 억울해하고 슬퍼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항상 나쁜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궁내막증으로 수술을 받지 않았으면 내가 은창이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나를 수술해준 의사는 태어날 아이입장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어서 임신부터해라.’ 라며 우리부모님과 나를 부추겼지만, 이런 말이 없었다면 과연 #안창부부 는 존재했을지…

은창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인생의 굴곡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맛볼 수 있었을지…

항상 나쁜 것만은 없다.

그러니 나도 내일은 그만 미루고 용기내어 산부인과에 가봐야겠다. 



*자궁내막증이란 자궁 안에 있어야 할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밖의 복강 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가임기 여성의 약 10~15%에서 발생되는 흔한 질환입니다.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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