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점점 고도화되고, AI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자기 할일만 잘하는' 톱니바퀴 같은 사람들은 더는 설자리가 없어질 세상이 올 것이라고 무려 15년 전에 강력히 주장했던 예언서 같은 책.
대신 그 톱니바퀴들을 서로 연결해서 이어주는 '린치핀'같은 존재들은 앞으로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게 책의 요지다.
실제로 지금은 '프로 N잡러'나 '부업은 필수'라는 개념이 유행하는 걸 보고 있으면 어느새부터인가 더 이상 회사가 내 삶을 보장해 준다는 개념은 무척 희미해진 게 사실이다.
대기업일수록 '나'의 존재나 의미는 희석되기 마련이고 냉정히 말해 언제든 '더 젊고, 더 똑똑하고, 더 말 잘 듣는' 지원자들이 언제든 내 직무를 대신해 갈아 끼울 수 있기 때문에.
눈치채셨겠지만, 당연히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같은 일차원적인 얘기를 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자기가 몸담은 일을, 나아가 인생을 더 "예술적으로" (실제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표현이다.) 만들 것인지.
'나'라는 톱니바퀴를 어떻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병원에서 3교대를 하는 간호사는 99%가 부서 동료들과 똑같은 일을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하는 일은 당연히 남들도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고, 업무에 있어서 '개성'이나 '예술'은 일체 허용될 틈이 없다. 세세한 수기술, 프로토콜 하나하나는 모두가 할 수 있고 에러가 없는 방향으로 꽤나 정밀하게 다듬어지고 주기적으로 교육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쭈욱 그래왔듯이 학생 때처럼 획일화된 교육과정을 거쳐 '비슷한 퀄리티'의 인재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여담으로 적다 보니 한자로 인재의 재는 재료의 '재'와 똑같고 / 영어로 HR (Human resource)는 사람을 자원으로 부른다는 사실이 무척 이 책의 인사이트와 맞닿아 있어서 놀랍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직장에서 효과적으로 튈 수 있을 것인가. 애초에 여기에서 특별해지는 게 필요한 일이기나 한가에 대한 의문을 이상적인 답안을 보여준다.
내게 와닿은 얘기는 네 가지 정도로 읽혔다. 요점을 잊지 않도록 간단히만 정리하고자 한다.
열일하고 있는 후배 간호사. (어떤 일들은 아무나 할 수 없긴 하다)
1. 감정노동을 아끼지 마라.
'감정노동은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용량이 늘어나고, 쓰지 않을수록 작아진다.'
놀랍게도 간호사들의 겪는 번아웃 증후군의 가장 큰 이유가 먼저 나온다.
병원이란 (특히 중환자실은) 태생적으로 지독하게 감정집약적인 장소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가족이 아프고 죽거나 다치거나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때로는 우리는 너무 고마운 존재이기도, 동시에 자주 몹시 밉거나 의심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맡기고 시간이 흐르다 어떤 임계점이 지나고 나면 사람은 놀랍도록 무감각해진다.
일하면서 감정이 없어지고, 에너지를 아낀다.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베테랑'이 된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가장 큰 퇴보라는 것.
2. 사람들을 모으는 윤활제가 돼라.
소위 말하는 대문자 E 같은 외향적인 인간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선에서 해낼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파하고 그걸 각인시키라는 얘기.
그건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일수도 있고, 어떤 건설적인 모임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역할이 될 수도 있겠다.
그건 어떤 AI도, 기술도 해낼 수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다.
3. 공장노동자가 아닌 예술가로 살아라.
'아무런 생각 없이 해낼 수 없는 일들에 익숙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톱니바퀴가 되기를 받아들인 가장 큰 저주다.'
일이 익숙해져서, 혹은 업무가 단순해서 어떤 일을 기획하지 않아도 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 자리에 당장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와도 해낼 수 있다면 그건 이제 당신에게는 더는 어떤 의미도, 가치도 없는 일이다.
똑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일을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병원에서만큼 사람들이 연약해지는 곳이 있을까. 나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 관심으로도 사람들에게 쉽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예술이 되기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4. 피카소도 항상 예술을 할 수는 없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한 피카소 조차도 자신의 어떤 작품들은 스스로 '가짜'라고 부른다.
나 역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날들도 있을 테고, 많은 이유로 무감각해지거나 생각 없이 일하는 순간들이 분명 있을 테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또 인생을 지금 예술로 만들고 있는지 가끔씩은 점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