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세경 May 30. 2023

수험생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20년 9월에 발행했던 작품을 퇴고하여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코로나는 언제 끝날까


지나간 2주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시간이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매장에서 손님을 받을 수 없었고 음식점과 술집은 저녁 9시에 문을 닫아야 했다. 어디든 가게에 입장할 때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야 했고 뭔가 찝찝해도 개인정보제공에 동의를 해야만 했다. 한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 명부에 적힌 여자 손님의 전화번호를 보고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는 뉴스가 있었고 1호선 신길 역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승객이 신고를 받은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나보다 이십 년 삼십 년을 더 사신 어른들도 산전수전 겪었지만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전은 처음이라고 하시니 살면서 이런 일들을 언제 또 겪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빨리, 다신 볼 수 없을지라도 빨리, 코로나 시대가 끝났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수험생 친구가 있다. '회계사' 자격증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는 코로나가 있기 전부터 '자발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카카오톡에서도 답장이 없다. 친구의 그런 행동이 잘못됐다고는 할 수는 없고 애초에 공부라는 건 혼자서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해야 한다. 한정된 시간에 지식을 쌓고 문제 풀이 기술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간 절약이 필수인 것이다. 친구와의 만남이든 가족과의 시간이든 공부 외의 것들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그게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도 이렇게 지치는데 7년째 스스로를 가둬버린 친구는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친구가 수험생활을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래 빨리 붙는 게 이상한 거지~ 한번 더 파이팅 해보자' 라며 재수 생활을 응원해 줬다. 하지만 그게 세 번 네 번 반복되다 보니 '그래 어쩔 수 없지...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하는 마음,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응원은 하겠지만 수험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지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도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친구의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솔직히 이제는 수험생활 보다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의 태도도 조금은 변했다. 처음에는 불합격에 대한 위로를 구하고 앞으로 에 대한 응원을 바라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위로보다는 무관심을 더 바라는 것 같다. 응원해 주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무관심 속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이다. 이제는 만나서도 수험생활에 대한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그런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꺼려하고 공부가 일상인 '자기 얘기'를 숨기는 느낌이다.


'나의 일상은 맨날 똑같고 재미없어. 그리고 이제는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조차 싫어. 그러니 나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마라. 성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줄게'


랄까, 힘든 일이 반복되면 누군가의 위로조차 버거울 때가 있는 것 같다.


친구가 자기 세계에 갇히지 않을까 싶어 걱정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코로나 우울증'이 생기는 것처럼 사람들과 멀리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수가 줄고, 웃음을 잃고, 생기가 없어질 수 있다. 속마음을 드러내기 꺼려하고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수험생이란 원래 그런 거지~' 하며 넘어가기엔 칠 년째 그런 생활을 하고 있으니 쉽게 말할 일은 아니다.


20대에서 30대는 인생을 살아갈 가치관이 정해지는 시기다. 방향성과 같은, 그런 게 생기는 시기이다. 물론 그 후에도 작은 부분들에서의 변화는 있을 수 있고 또는 어떤 계기로 가치관 자체가 바뀔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수정/보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거나 가치관을 흔들만한 커다란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시기에 굳어진 생각으로 앞으로를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근데 친구는 지금의 시기, 그렇게 생각이 굳어질 지금의 나이 대부분을 수험생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수험 공부의 본질은 경쟁이다. 그리고 그것의 성패는 결과로만 드러난다. 결과로써 자신의 삶을 대변하고 남들과의 상대 우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활동이라는 말이다. 그걸 위해 공부가 아닌 다른 행복들은 등한시하는데, 내가 걱정하는 것이 이런 부분이다.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행복들을 무시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로써 나를 나타내는 습관, 남들보다 앞서야만 살아남는다는 마음가짐, 그런 것들에 집중하며 7년을 살다 보면 그런 삶의 태도가 비단 시험에서 뿐 아니라 친구의 인생 전반에서 나타날 수 있다. 남들보다 인정받는 직업, 남들보다 좋은 회사, 남들보다 높은 연봉, 남들보다 좋은 차, 남들보다 비싼 집, 그것들만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남들보다 잘하려는 강한 의지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다. 그렇게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존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만이 전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결과는 '실패'일지라도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뒤처져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낫다면 그것만으로도 멋진 일이라는 것이다. 치열하게 사는 건 좋지만 꼭 그게 수험생활처럼 남들보다 앞서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친구는 이미 공부를 시작했다. 7수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이 시간은 오로지 공부만 하는 게 맞는 일이다. 피트니스 대회를 며칠 앞에 둔 사람처럼 건강이 조금 나빠져도 한동안은 단백질만 먹으며 운동만 해야 하는 것이다. 대회가 끝나고 몸이 아프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의 일이지 이왕 시작한 이상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신나게 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왕 공부를 시작한 이상 수험 생활의 부작용은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그때는 내 생각을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수험 생활 없는 세상에서 '자발적 거리두기'는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다른 기쁨들도 느껴보자고, 또 다른 도전이든, 일상에서의 소확행이든, 다 좋다고, 무엇이든 괜찮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싶다. 수험생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행복은 무엇이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맥주 한잔하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자만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삶과 행복에 대해 친구 녀석보다 많이 생각해 봤다는 마음이었다. '자만으로 써버린 글'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말을 하려는 이유는 친구로서, 10대 때부터 함께 해온 인생의 동료로서, 우리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이 보다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그 조차도 하지 않을 걸 알기에 조만간 꼰대가 되어볼 예정이라는 말이다. 친구의 자발적 거리 두기가 이제는 끝났으면 좋겠다. 합격이라는 결말이길 바라지만, 혹시 그게 아닐지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나이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