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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ug 13. 2023

실력 확장의 메타포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 라이너 릴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2020년은 트로트의 해였다. <미스트롯>의 송가인과 <미스터트롯>의 임영웅으로 시작된 트로트 열풍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트로트 예능을 시작한 <TV조선>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TV 채널들도 하나 같이 트로트 방송을 시작했다. 이제는 TV만 틀면 트로트가 나오고 거기에서 유명해진 트로트 가수들도 이제는 팬덤을 거느린 스타가 되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트로트를 2020년 10대 상품 중의 하나로 소개했다. 트로트는 <기생충> <KF마스크> <화상 커뮤니케이션> 등과 함께 2020년에 가장 많이 소비된 상품 중에 하나였다. 그야말로 트렌트, 그야말로 트로트 전성시대였다.


TV 채널마다 트로트가 나오는 걸 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트로트 잘 부르는 사람 참 많네, 저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것이다. 예전에 <슈퍼스타 K>나 <The Fan>,  <K pop star> 등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매년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이 나오는 데 참가자들은 항상 새로운 얼굴들이고 그들은 모두 노래를 잘했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요새 트로트 열풍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알았는데 트로트를 잘 부르는 사람도 이렇게 많았나, 싶은 것이다.


물론 TV에 나온다고 모두가 프로 가수처럼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정말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분된다. 그에 따라 우열이 나뉘고 서열이 매겨진다. 음악 경연에 출연했다고 해서 모두 하나 같이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심사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면, 모두 노래를 잘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그들 중 한 명과 노래방에 간다면 그의 노래를 듣고 감탄할 것이다. 왜 이렇게 노래를 잘하냐고, TV에 나가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음악 경연 프로가 나올 때마다 처음 보는 인물들이 나오는 걸 보면 세상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참 많다. 그리고 이제는 숨어있던 트로트 고수들도 세상에 나오고 있다.


지금은 유튜브의 시대다. 그래서 어떤 분야에 실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유명해지기도 한다. '연반인'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연예인 + 일반인]의 합성어다. 일반인이라도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으면 그걸 세상에 알리기가 쉬워졌고 연예인처럼 유명해지는 일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노래를 잘하는 일반인의 영상이 화제가 되면 '일반인 맞음?' '개쩌는 일반인'과 같은 댓글이 달렸지만 요새는 그런 사람이 워낙 많아 '일반인 되기도 어렵다'라는 말도 생겼다. 그건 노래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몸 좋은 사람은 왜 이렇게 많고 축구 잘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새삼 놀랍다. 세상에 고수는 많다.


'1만 시간 법칙'이라는 게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등장하는 개념인데, 특정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하는 '1만 시간 법칙'은 빌 게이츠, 비틀스, 모차르트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의 공통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하지만 재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1만 시간 법칙을 비판하는 주장도 적지 않다. 노력하는 시간보다는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런 것이다. 재능이 중요하든 아니든,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선 분명히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노력이나 시간 투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이 2023년이니까 11년 전, 그러니까 2012년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매일 운동장에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운동장에 나가 훈련을 했다.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닌 23살의 대학생이었고 삼수까지 해서 대학에 갔지만 매일을 그렇게 축구만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목표가 높지는 않았다. 프로 선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3부 리그 선수를 목표로 잡았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정식 축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 나가 개인 연습을 했고 저녁이 돼서는 선수 출신의 코치들에게 훈련을 받았다.


축구를 배우는 건 처음이다 보니 기본기부터 새로 해야 했다. 오랜 시간 취미로 하기는 했지만 엘리트 선수들의 훈련 방식은 처음이었다. 드리블, 슛, 패스 등의 기본기를 처음부터 배웠고 생전 해본 적 없는 전술 훈련을 받기도 했다. 처음이어서 그런지 가르침을 받는 대로 몸이 달라졌다. 노력하는 만큼 기본기가 좋아졌고 연습하는 대로 체력은 좋아졌다. 마른 휴지가 물에 젖듯 빠르게 배우는 걸 흡수했다. 처음 3개월은 그랬다. 배우는 대로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서는 정체였다. 실력이 늘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예전만도 못한 것 같았다. 매일 축구 생각만 하고 매일 운동만 하는데 어떤 때는 예전보다 못할 때도 많았다. 운동을 매일 해서 엄지발톱은 자꾸 빠지고 발목은 자꾸 삐걱이는 데 실력은 그대로였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유혹하는 마음도 생겼다. 운동을 매일 해도 실력은 똑같은데 띄엄띄엄 배워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정작 불안해서 그러지는 못했고, 그런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날이었다. 훈련은 아니었고 놀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근데 그날 불현듯 실력이 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3개월 동안 지지 부진했던 몸이 한순간에 변한 것 같았다. 드래곤볼처럼 머리 색이 변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몸은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좋아진 실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축구 실력이 늘어버린 것이다. 그 느낌을 '세계의 확장'이라고 표현하려고 한다.


세. 계. 의. 확. 장


단지 순발력이 좋아졌다, 슛과 패스가 정확해졌다,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달라져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몸을 더 작게, 더 세분화해서 움직일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한번 움직일 때 몸을 1m 단위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30cm 단위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몸을 동서남북 4가지의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동서남북을 포함해 동북, 동남, 서남, 서북 등의 8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1m씩 동서남북으로만 갈 수 있던 내가 이제는 30cm 단위로 8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작은 차이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몸의 변화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수십 가지가 늘었다. 단위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동작은 많아졌고 그 차이로 나는 수비수를 속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는데 3개월이 걸렸고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그렇게 변했다. 그걸 직접 몸으로 느낀 그날, 그 실감의 순간을 기억한다. 한 단계 도약한 느낌, 세계가 확장된 실감이었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선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잘하기 위해서는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실력이 정체되는 시간을 만난다.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을 때가 온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을 하다 보면 일 순간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이 온다. 흔히 말하듯 계단처럼 실력이 상승하는 순간이다. 끓는점이 지나야 끓기 시작하는 물처럼, 그렇게 한 단계 도약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런 세계의 확장을 육체적인 실감으로 경험했고, 감사하게도 몸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축구는 당시에 1년을 배우다 그만뒀다. 패기를 가지고 도전했지만 무리한 운동으로 발목이 자꾸 아팠고 정강이가 자꾸 시렸기 때문이다. 결과는 없었지만 도전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당시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는 평생 실력을 늘리고 싶은 분야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글쓰기다. 3년 반이 넘게 글을 쓰고 있고 어쩔 수 없는 날을 빼면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잘 쓰려고도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에서 할 수 있는 세계의 확장은 무엇일까. 어떤 점에서 실력이 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이 좋아져야 도약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독자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고, 몰입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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