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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ug 17. 2023

[추세경의 필사노트] 두부

추세경의 필사노트 3탄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가르쳐준 박완서 작가의 책을 소개합니다.

박완서,『두부』, 창비(2002)

 
고독의 밑바닥을 치지 않고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그건 슬픈 일이다. 글 쓰는 일에 사로 잡히게 될까 봐 점점 더 몸을 사리게 되는 것도 그 고독하고 처절한 암중모색을 견딜 만한 힘이 나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우리에 인간 안에는 가장 추운 계절에 입춘을 두고, 가장 더울 때 입추를 둔 것처럼 아무리 거대한 자연이라 해도 그 전성기의 오만에는 문득 균열을 일으켜 보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어머니가 자식들한테 가르친 사는 법도 중 돈에 관한 건 좀 특별한 데가 있었다. 누가 돈을 꿔달라고 했을 때 못 받으면 가서 애걸복걸해서라도 받아야 할 만큼 너에게 중요한 돈이면 처음부터 꿔주지 말아라. 그러나 쌀 살 돈이 없다면 무조건 꿔줘라. 자식 월사금 낼 돈이 없다면 당장 쌀 살 돈이라고 해도 당장 꿔줘라. 돈거래는 될 수 있는 대로 못 받아도 아깝지 않을 사람하고만 해라. 그건 사람에게 꿔준 건 즉시 잊어버려라, 등등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노력해서 번 돈을 돈 자체에도 격이 있어 함부로 쓰거나 너무 안 쓰면 돈이 스스로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개성사람들이다.


후하다는 건 덮어 놓고 뭘 많이 준다는 게 아니라 일단 도와줄 만해서 도와주면 그만이지 그걸 갖고 질질 끌며 생색을 내려 들지 않는 깔끔함을 말한다.


주로 자기가 한 작은 선행이나 자선을 오래 마음에 두고 보답을 바라거나 공치사하고 싶어 하는 구질구질하고 산뜻하지 못한 인품을 딱하게 여길 때


즐거워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고통받기 위한 독서가 내 성향에 맞는다는 자기 발전의 계기도 되었다.


나를 주눅 들게 하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안의 사대주의임을 알면서도 그게 극복이 안된다.


생각이건 말이건 글이건 모국어로 밖에 못한다는 것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모국어 안에서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게 내 한계이자 정체성이다.


하나의 목숨은 하나의 우주고 각자 무엇과도 바꿔치기할 수 없는 고유한 세계이다.


망자를 위하여 지노귀 굿을 하는 것은 망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조금이라도 망자의 무게로부터 가벼워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만 그건 존경이나 우정, 친근함 하고는 다르다. 인간적인 약점이나 고뇌,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속내를 서로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완서 님의 수필을 좋아하는 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삶에 대한 지혜가 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문장들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런 느낌이 든다. 박완서 작가는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다. 추하다면 추하고,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자기 속내를 덤덤히 드러낸다. 담백하고 솔직한 표현에 공감이 가고 자꾸 읽고 싶어지는 글을 쓴다. 그녀의 수필집은 시중에 나온 것을 거진 읽었다. 풀잎이나 꽃의 이름을 열거할 때는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책을 놓지 않은 건 그녀의 힘 있는 문장 덕분이다. 20대 초반, 그녀 덕분에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웠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고, 떨어지는 단풍 아래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녀의 수필집을 추천한다.



두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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