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세경 Mar 13. 2024

나의 비포 앤 애프터

“쟤 또 땜빵 만진다”


지인들은 내 습관을 안다. 인터넷에는 ‘발모벽’이라는 의학용어로 나오는데, 머리를 만지다 뽑는 습관이다. 머리를 손끝으로 만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걸 뽑는 순간엔 쾌감을 느낀다. 중학교 때 생긴 습관이니 20년이 돼 간다. 만진 자리를 또 만지고 뽑은 자리를 또 뽑으니 뒤통수엔 동전 백 원만 한 탈모가 생겼다. 직접 만든 땜빵, 가내 수공 땜빵이다.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십 년을 넘게 말했다. 어떨 때는 혼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바뀌지 않았다. 노력을 덜 한 것도 있지만 마음속에는 ‘세상에 더 심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데 이 정도야 뭐’,라는 마음, 어떤 오만도 있었다.


작년 12월에 엄마와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할머니 댁에 갔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엄마는 아내에게 나의 땜빵에 대해 이야기했다. 워킹 맘이었던 엄마는 모유수유가 힘들어 어느 날 갑자기 그걸 중단했다고 했다. 내가 머리를 뽑는 게 그거 때문인 것 같다고, 자기 때문인 것 같다고,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용하다는 신점을 본 사람처럼 믿었다. 논리적으로 납득이 어려웠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어깨에 많은 걸 안고 사는 분인데 그 어깨 위에 내 오만까지 얹어져 있었다.


그 후로 그 습관을 고쳤다. 아니 고쳐졌다. 가끔 머리를 만지긴 하지만 더 이상 뽑지는 않는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 이상 머리를 뽑을 수 없다. 골프장 홀 같던 땜빵에도 새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과 불행 사이의 치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