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감성과 감상이 쌓이다 못해 흘러내렸다
흐렸다가 비가 내렸다를 반복했다. 이 여정이 시작되고 끝나는 순간까지. 서울이거나 양양이거나 바다이거나 뭍이거나 차 안이거나 밖이거나, 거슬리지 않는 빗방울이 함께.
달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야기를 하려고 달리는 건지. 남다른 거리, 속도, 시간 속 결성된 크루. 과연 이 런은 건강한 걸까 그렇지 못한 걸까 항상 논하면서 시작한 이 발걸음은 양양까지 끌고 왔다. 시작은 무엇일까, 과정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진행형인 모든 과정을 계속 상기시켰다.
추적거리는 기사문해변에 반짝거리는 조명과 쿵쿵거리는 스피커는 오히려 좋았다. 마치 영화 속 인디밴드 공연처럼 붙어있던 종이 포스터 몇 장이 만들어낸 감정은 낯설었다. 사람이 적었다거나 내가 가지고 온 음악이 조금 덜 신나서 어떡하나 하는 고민은 금세 씻겨 나갔다. 사장님의 흥겨움이,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내 친구들의 끄덕임이, 선생님의 즐거움이 나에게로 전이되고 나는 그만큼 실수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조금 더웠지만 대수롭지 않았고, 여름 바닷가의 습기만큼 즐기고 이길 수 있었다.
나 소울풀 하우스 좋아하나 보다.. 준비하는 동안 그 무드에 맞지 않아 내가 초대되어도 괜찮을까 고민하던 게 민망할 정도로, 나는 정말 좋았다 디제잉도 음악도 공간도 사람도.
그 누구보다 적은 시간에 많이 움직이고 느낄 줄 아는 우리는 인구의 새벽을 만났다. 비에 젖지 않는 유흥의 길거리와 눈빛들. 그 무드에 비례한 맛있는 피자를 먹고 그 흥에 비례해 먹을 것을 호기롭게 주워 담았으나, 물만 마시고 잠들었다.
비가 오다 말다, 말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두텁지 않은 벽으로 양양의 아침을 받아냈다. 섭국, 브루드 커피, 감자 옹심이, 오징어순대와 메밀전병으로 양양의 맛을 이해했다. 어떠한 방향이 부르듯이 산책하며 바다를 발견하고 또 시장을 발견했다. 공원을 보며 와드를 구상하고 디제이 무대를 꾸리는 건 어쩌면 직업병, 취미병, 두 사람의 두 가지의 블렌딩 믹스 셋.
몇 번의 방황 끝에 적절한 장소를 찾고 돗자리를 펴고 누웠지만 비가 와서 인사이드 아웃을 봤다. 슬픔과 기쁨이 섞이는 감정을 발견한 사람과, 숨겨있던 기쁨과 슬픔을 다시 끄집어낸 사람에게 영화 크레딧과 함께 해가 비추었다. 이건, 계시야.
뒤져도 나오지 않는 태닝오일을 뒤로하고 다이소로 향했다. 옆 하나로마트도 들렀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장비로 다시 바닷가를 향해 야외 태닝을 했다.
모래가 같이 섞여 어설프게 미끄럽고 까끌했지만 조금이라도 해를 내어주는 하늘의 기회를 즐겼다.
러닝을 할까 했던 마음이 조금 아쉬웠지만 아쉽지 않았다.
차 안에서는 그때그때 무드에 맞게 음악이 흘렀다. 차문은 끝없이 올렸다, 내렸다, 어제의 디제잉이 멈추지 않은 듯 풍경과 재생되었다. 양양음악여행, 이 테마와 적절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종종, 현실을 초월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고- 그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낱말이 내게 들어오는 순간 또 다른 생경함이 펼쳐지고 접혔다. 이건 기억하고 기록해야 해. 멈추지 않고 나눈 대화는 차곡차곡 또 어느 부분을 쌓고 있다. 쌓이는 경험은 언젠가는 발휘돼.
끊임없이 움직이고 제안하고, 또 멈추지 않고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이 패턴. 이것이 아니더라도 ’ 재미는 없더라도 쉼이 있겠지 ‘ ’쉬지 못하더라도 또 재밌겠지‘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 단순하면서 명쾌한 문장의 결론은, 몇 년 전 놓쳐 잃어버린 내 어느 곳 열쇠를 찾아 손에 쥐어준 기분이었다. 무언가가 해결된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문이 열렸다. 분명하게.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 손을 모아서 형성된 코어 메모리가 된 시간. 비와 함께 맞이한 양양의 24시간은 몇 개월만의 일기만큼 소중하다는 걸, 꽤 많이 잊어버린 일상 속 이것만은 잊지 않고 싶음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