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다 꺼지고 남은 것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제목처럼 거센 불길 같은 작품입니다. 처음 불씨를 지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불이 주변을 삼킵니다. 이런 자연의 이치는 영화의 플롯을 잘 나타냅니다. 영화의 시작은 잔잔하고 여유롭습니다. 영화는 개성 있는 인물들과 배경을 소개하고 그들은 각자의 아픔과 고민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갈등이 시작되면서 뜨거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이야기는 비극을 향해 내달립니다.
제게 '버닝'은 영화가 다 끝나고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할 만큼의 충격을 준 작품입니다.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좌석에 남아 있는 관객이 적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저와 같은 감상을 받은 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몇몇은 두통을 호소하듯 머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버닝'은 보는 이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빼어난 드라마입니다. 영화를 보고 두 달을 훨씬 넘겨서야 이 글을 쓰지만 사실 '버닝'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극장을 나선 그다음 날부터였습니다.
영화를 전공했지만 영화의 리뷰나 평론을 쓰는 작업이 생소합니다. 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이렇게 영화를 보고 감상을 쓰는 '리뷰'라는 형식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평론가와 관객의 글이 넘쳐나고 짧은 한줄평부터 유튜브 영상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기에 굳이 또 다른 리뷰를 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버닝'을 보고 나선 오랫동안 마음속에 울림이 간직되었고 제가 느낀 감상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에는 꽤나 좋은 글이 나올 것이라 자만했습니다. '버닝'은 파격적인 주제와 전개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작품입니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 현실 반영, 미장센, 결말과 관객들이 내린 해석 등 논란거리도 많은 만큼 글의 소재로 쓸 재료도 풍부했습니다.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인물들이 지닌 잔인함과 폭력성. 꾹꾹 눌러 담아온 욕망과 분노가 어떤 계기로 표출되어가는지에 대해 철학적인 소재들을 이용해서 잘 분석한 글을 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써가면서 금방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모자란 글재주에 더불어 허세로 채워져 가는 글을 보고 제가 싫어하는 평론가들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이 글을 '서랍장'에 넣어 놓았습니다.
두 달을 넘겨 다시 글을 꺼내봅니다. 빨갛고 뜨거운 불이 꺼지고 난 자리에 하얀 재와 검게 탄 흔적이 남듯이, 결말의 충격을 걷어낸 뒤의 감상은 극장을 나섰던 당시와는 사뭇 다릅니다. 미스터리와 살인, 폭력과 논란. 이런 영화의 화제성을 뒤로하고 다시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청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종수, 해미, 벤 모두는 제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표현처럼 아는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청년들에게 현실의 벽은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결국 'N포 세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상을 내려놓은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명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족함을 누리고 자랐지만 그것이 정신의 피폐와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합니다. 인물들이 느끼는 외로움, 무력감 그리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분노는 우리 세대의 고민을 거울처럼 비춥니다.
'버닝'은 실체 없이 애매모호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더 내가 마주한 현실과 공감이 됩니다. 예순여섯 살의 이창동 감독이 화면 안에 창조한 청춘은 젊은 감독들의 '청춘 영화'보다 더 진실되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다른 세대를 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감독의 작은 실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