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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 Yong Apr 18. 2019

<러브리스> 부모의 삶에 아이가 낄 자리는 없었다

브런치무비패스 03


부모간의 싸움은 아이에게 전쟁만큼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비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러브리스>는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는 부모의 이야기다. 이들의 가족 관계는 끝을 맺은 지 오래다.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어린 애인과 새로운 가족을 이룰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연상에 부자인 데다가 자식을 독립시킨 애인이 있다. 아내 '제냐'와 남편 '보리스'를 연결하는 희미한 공통분모는 팔리지 않는 집과 둘의 아들 '알로샤'이다.


이혼 수속 중인 둘은 이미 각자의 삶을 건설하고 있지만 그 안에 아이는 없다. 부부의 소통 방법은 싸움뿐이다. 누구도 아이를 맡고 싶어 하지 않고 차라리 보육원에 보내 버리겠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팔리지 않고 애물단지로 남은 집처럼 아이도 부부 각자가 설계하는 밝은 미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부모의 언쟁을 엿들은 알로샤는 다음 날 사라진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부모가 아닌 '개인'의 고통


<러브리스>가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과 다른 점은 부모가 아닌 온전히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 50분은 오롯이 제냐와 보리스 각자의 삶을 지켜보는데 쓰인다. 해고될지 모르는 직장에서의 고민, 새로운 연인과 일궈나가는 사랑이 주된 내용이다. 부부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아들의 존재는 부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초부터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서 비롯된 결혼이었다. 흔히들 부모가 되면 이름을 잃는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누구 엄마', '누구누구 아빠'로 불리게 되면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이 더 큰 자아가 된다.  제냐와 보리스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부모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의 굴레를 벗어난 새 삶에 집중하고, 그 사이에서 알로샤는 철저히 외면당한다.


제냐와 보리스는 실종된 아이를 찾는 과정의 주역조차 맡지 못한다. 실종아동 봉사단체가 수색을 이끌고 둘은 옆에서 조력자의 역할만 할 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제냐와 보리스가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매우 적다. 둘은 이미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아들은 이전 경유지에 두고 온 수하물이다. 수색 과정에서도 다른 그룹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단서를 찾아다닌다. 애인과 사랑을 나눌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지만, 둘이 함께 해야하는 부모의 역할에선 방관자로 남는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삶


아이의 실종은 이혼 이후의 삶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집은 팔리고 알로샤가 쓰던 가구는 철거된다. 아이의 존재는 눈에 얼어붙은 실종아동 포스터에 간신히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보리스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본다. 제냐는 애인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운동을 한다. 알로샤가 사라지지 않았어도 위의 장면은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알로샤의 실종은 이미 암울한 잿빛 도시에 상실감만 더해줄 뿐이다. 영화는 사랑하지 않는 개인들이 가족을 이룰 때 오는 비극을 보여준다. 임신과 결혼, 서로의 존재를 수단으로만 여긴 부부.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의 삶에 아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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