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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 Yong May 29. 2019

우리는 서로를 억압한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어나더 컨트리>는 1981년 초연한 연극으로, 1930년대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학생 집단 내의 갈등을 다루었다. 줄거리나 시놉시스를 읽어보는 것보다 오히려 적은 정보를 가지고 가서 보면 더 좋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연극을 보고 난 뒤 극의 기반이 된 실존 인물의 정보를 찾아보며,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기, 전쟁 후에 다가올 이념의 냉전을 맞닥뜨릴 청년세대가 가졌던 자의식의 혼돈을 추리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학교 내의 권력 다툼, 이념의 충돌, 사랑과 야망 사이의 갈등은 단순히 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닌 영국이라는 견고한 계급사회의 단면이다.   



학교라는 이름의 권력 사회


극의 중심은 사랑에 빠진 청년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주의자 토미 저드. 둘의 공통점은 학교의 엄격하고 부당한 규율을 조롱하는 아웃사이더라는 것이다. 영국 엘리트 가문의 자식들이 다니는 명문 학교에서 전통과 규율은 지배 계급의 기득권과 명예를 견고히 하는 장치이며, 학생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학교는 군대를 본뜬 사열식을 강요하고 선택된 소수 학생에게 권한을 부여해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다. 교육이라는 가치보다 미래의 엘리트 집단을 만드는 데 열중한다. 이 학교로 오는 학생들은 이미 날 때부터 금수저였지만 교내에 형성된 또 다른 권력 집단에 안착해야만 확실한 미래의 성공을 보장받는다. 먼 훗날 사회와 공직에서의 성공 여부가 청소년 시기에 결정되는 것이다. 


같이 연극을 본 친구는 극에서 표현한 학교의 기형적인 구조가 '푸코'의 이론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현대 사회에선 우리 모두가 서로를 억압하고 감시한다고 주장했다. <어나더 컨트리>의 인물들은 선택받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남의 치부를 이용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행위는 누군가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시스템의 문제 이외에도 권력을 좇아 대립하는 개인과 집단의 횡포는 양쪽 끝에서 서로의 목을 죄는 올가미와 같다.



콜린 퍼스가 출연한 공연의 포스터


이상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일까


<어나더 컨트리>라는 제목처럼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이상향을 학교와 영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 

극의 인물 중엔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도록 떠밀리고 나서야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이는 인물이 있다. 세상엔 자신의 뚜렷한 양심이나 가치관을 기반으로 이상을 설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주위 환경과 자신에게 처한 위기에 의해 진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부류도 있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이념과 진영이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어나더 컨트리>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연극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로 반목하는 여러 진영이 존재해왔다. 우리는 집단주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개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억압되는 세상에선 어느 한 집단의 개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개인이 환경과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다른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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