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벅스버니로 유명한 미국 애니메이션 루니튠즈 DVD를 자주 봤다. 이중 몇몇 만화 앞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붙어있었다.
20세기 초중반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미국이 가지고 있던 타인종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양인은 쭉 찢어진 눈과 뻐드렁니를 가지고 있고, 흑인은 얼굴의 반이 넘는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적군을 희화한 프로파간다로 쓰인 영상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고 유해한 묘사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루니 튠즈를 소유한 워너 브라더스는 이 만화들을 묻어두는 대신 원본 그대로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만화를 삭제하거나 재편집하는 일은 그 시기에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를 사죄하는 일의 시작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를 통해 부끄러운 과거를 거울로 삼는 데에 있다. 지난 세기의 악행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로 작용한다.
"끝까지 싸워 주세요"
영화 중간에 나오는 김복동 할머니의 영상 메시지다. 지치고 고된 몸을 소파 위에서 휴식하면서도 웃으시며 남긴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 영화 리뷰는 그동안 써왔던 다른 글처럼 길지 못하다. 나름 뼈아픈 역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뉴스와 책을 통해 배워왔던 역사적 사실. 머릿속에 자료로만 담겨 있었을 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영화를 본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김복동 할머니와 많은 이들의 투쟁은 내 주변 삶에도 녹아있었다. 내 친한 지인은 수요집회에서 직접 김복동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미국 대학원에서 인권을 공부하는 한 학생은 위안부의 고통을 논문으로 조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그들은 역사의 자료가 아닌 살아 숨 쉬는 피해자이자 강인한 투사였다.
일본은 정부의 주도하에 수십 년간 공을 들여 국가의 이미지를 전쟁범죄국가가 아닌 원폭에 희생당한 '전쟁피해국가'로 탈바꿈 해왔다. 태평양전쟁은 한국과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 이런 참담한 사실 앞에서도 과거의 일은 덮어두고 가자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은 할 만큼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정부가 이끌어낸 합의는 전인류에 행한 끔찍한 죄악에 선사한 면죄부였다. 일본 정부가 건네는 '화해와 치유'의 손짓은 사죄가 아닌 모든 악행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검열과 왜곡을 목적으로 한다.
배우 한지민의 내레이션 중 인상 깊었던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