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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Apr 21. 2022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게 선물이었다

오늘 2022년 4월 20일 수요일에 난생처음으로 라이브 방송이라는 걸 해봤다. 전에 청소년을 위한 직업 탐색을 목적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사전 신청을 받아 소수의 아이들과 진행했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의 전반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가의 작품 세계랄지, 영감이랄지, 정말 수수진이라는 개인과 작품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올해 초, 섭외를 받았을 때만 해도 별생각 없이 오케이 오케이 했는데, 막상 실제로 이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수진이 수수진으로 탈바꿈되는 지난 시간을 쭉 돌아보게 되었다. 수수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4년째, 그러니까 올해는 5년 차로 접어드는 시기다. 그간 정말 열심히 했고, 진심으로 즐거웠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참 행복한 지난 4년이었다.


지금은 작가라고 불리는 게 매우 익숙하지만, 처음 작가님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을 때, 굉장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차라리 수진 씨라고 불러줬으면 싶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말이었고, 가끔은 나 놀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2018년도의 김수진은 무슨 말만 들어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고, 치와와처럼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피해의식이 망상으로까지 번져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살을 퍼붓다 보니 작가라는 말조차도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고, 독립출판물 그까짓 게 뭐라고, 나한테 작가래?라는 생각까지 은연중에 갖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만든 내 책이 꼴 보기도 싫었다. 누구 좋으라고 힘든 시기를 책으로까지 엮어서 사람들에게 봐달라고 구걸을 하고 앉아있는 건지. 이런 게 작가라면 차라리 직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근사하게 사는 게 낫겠다.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나서도 오래도록 상처받은 마음으로 직장으로의 회기를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응당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궤도에서 벗어나 살아보니, 또 그런대로 살아진다. 그리고 놀라운 건 직장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다니는 사람만큼 많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걸 나는 미처 모르고 살았던 거다. 상당히 꼬인 사람이었는데, 재밌는 게 결국엔 글과 그림이 나를 살렸다. 입소문이 나면서 그 어떤 네트워크도 없는 내가 다양한 규모의 브랜드에게 섭외를 받고, 프로젝트를 하고, 신규 모바일 앱이라는 작은 규모이지만 그래도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수수진을 소개하는 시간까지 가졌다. 이 모든 게 나 스스로 한 게 아니라, 매 순간마다 그때그때 누군가가 옆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그림을, 내 글을 봐준 그 누군가. 수많은 누군가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빈털터리로 시작한 내가 지금은 좋아하는 차도 사고, 전세로 서울에 작은 작업실도 구했다(물론 대출 있음). 그러니까 수수진이라는 이름 하나로 돈을 벌고, 자신을 먹이고 입히며, 재산이라는 걸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내 재능으로 된 게 아니라, 나를 지켜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방송을 통해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며, "저는 그림을 그릴 때 모든 형태를 제 방식대로 단순화하고, 오브제에 어울리는 텍스처를 살리고, 마지막으로는 컬러 조합을 매우 신경 씁니다."라고 답했지만, 실제로 내 작품 세계에는 수많은 누군가가 있다. 그 세계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당신과 공유하는 것이라 닫힌 게 아니라 활짝 열린 문이다. 나는 내 그림의 많은 몫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다. 각자의 고유한 마음으로 내 글과 그림을 해석하고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작품 세계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문장은 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을 인터뷰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가장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내 눈에 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다. 비단 죽음을 앞둔 사람만이 깨닫는 진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지금 당장 눈과 마음에 새겨야 하는 말.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게 선물이라는 사실. 지금 전쟁을 치르는 나라의 예술가는 일상을 그림의 주제로 삼지 못 한다. 전쟁 앞에서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일상을 주제 삼아,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수수진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러니 모든 게 받은 선물이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이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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