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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Nov 20. 2022

외로움과 고독을 분별하는 과정

요즘은 글을 쓸만한 여유도, 그림을 그릴만한 시간도 없다. 쉬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거나, 운동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일을 감당할 만한 체력이 안 된다. 겉보기에는 철근도 씹어먹게 생겼는데, 실제로는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입이 헐거나 장염에 걸리는 여리디여린 몸뚱어리를 가졌다. 게다가 의욕을 갖고 뭘 좀 해볼까 하면 생리를 하는데, 생리 전후로는 면역력이 엄청나게 떨어져서 두통에 설사가 매일같이 이어진다. 영양제, 꾸준한 운동과 양질의 수면이 나의 일상을 유지해 준다. 예전에 언니들이 죽지 않으려고 운동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는데, 서른다섯의 언니인 나도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안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든지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운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상에는 늘 앉아있지만, 글을 쓰기 위해 앉은 건 오랜만이다. 자주 이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가도, 아니 이 시간이 희소한 탓에 더 귀중하다. 시간이 어떻게 간 줄도 모르겠는데, 2022년 11월 중순을 지나고 있다.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늘어남에 따라 무게도 묵직해진다. 마치 매일 늘어가는 나의 뱃살처럼, 시간도 그렇다. 한결같이 성실하게 흐른다. 며칠 전에는 상업 예술을 하는 선배와 통화를 나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창작인에게 연말이란 - 무조건 피크 시즌이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마치 월동 준비를 하는 동물과도 같이. 이 계절의 당연한 분주함을 당연히 여겨야 한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 당연함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배의 말을 들으며, 내가 하는 이 일이 결국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계절에 따라, 시기에 따라 움직이고 반응하는 일. 이것이 내게 '자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독립출판으로 모든 걸 시작했기 때문에, 상업 예술을 하는 작가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요즘은 지극히 상업적인 작업만 몇 개월째 지속하고 있다 보니, 독립된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과거가 너무도 까마득하다. 지금 내게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독립출판을 하고 싶다. 순전히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마무리되는 일. 그 모든 과정이 사무치게 그리운 요즘이다. 예술은 다 같은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나도 예전에는 동일한 질문을 했었다. 독립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그림이든, 같은 작가에게서 나오는 같은 작품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같은 접시에 내놓는 같은 음식이다. 그릇도 같고, 메뉴도 같다. 하지만 와중에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재료다. 대형 마트나 온라인 장보기로 쉬이 구입한 재료로 요리한 음식과, 꼬깃꼬깃 종이돈 내고 전통시장에서 발품 팔아 산 재료로 요리한 음식의 차이랄까? 하물며 그 재료가 같은 농장에서 왔다 할지라도, 재료를 찾는 모든 과정이 다르다. 작가에게는 과정이 결국 본질이기에, 다른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은 같은 본질을 갖지 않는다. 



상업 예술에도 분명히 작가의 고민과 생각이 들어가지만 철학이 들어갈만한 자리는 많지가 않다. 반면 독립 예술에는 철학이 들어갈 자리만 있다. 결국 나는 철학을 하고 싶은 것이다. 철학과 예술. 그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동시에 철학이든 예술이든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다. 고독. 오로지 혼자서 가야 하는 길. 고독과 외로움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 서서 가끔은 완전히 그 앞에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대, 이 길을 갈 준비가 되었는가. 마치 이것은 순례자에게 묻는 질문과도 같다. 그 묵직한 것이 건조한 광야 한가운데 현현히 나타난다. 그리고 나는 대답한다. 늘 혼자 작업실에서 틀어박혀 있는 사람에게 지금 뭔 소리 하시는 거예요.



결국에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그저 허공에 대고 혼자 하는 헛소리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겹쳐져 노동하고 밥을 먹고 씨름하는 시간에, 나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한다. 벌써 5년째 이렇게 살고 있다. 너무 긴 시간 혼자서 일했고, 혼자서 밥을 먹었고,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철학과 예술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콕 집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자체가 나고, 내가 그 자체다. 상업이니 독립이니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외로움과의 싸움이자, 외로움과 고독을 분별하는 과정인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바깥에 나가 공기를 들이마신다. 차다. 상쾌하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 혼자 서 있다. 고요하다.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고독하다. 좋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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