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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Dec 26. 2022

내 안에 있는 패배자에게

2022년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의 주기율표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 나이라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두피에 자주 등장하는 선명한 흰 머리카락은 내가 절대적인 시간의 영향 아래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시간이 자신의 존재감을 현현히 보이기 시작할 때, 인간은 조금씩 나약해진다. 연말인데다, 나이 먹는 거 생각만 해도 가뜩이나 서글퍼지는데, 우울한 얘기하려면 애초에 집어치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글프고 피곤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나약함에 대하여 말할 것이지만, 동시에 나약함이, 혹은 결핍이 나를 나로서 아름답게 만드는 일종의 역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인생 앞에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이 책상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 정도로 그림쟁이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이 건네준 공책 한 면에 네모난 얼굴을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링을 추가해 건네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가끔은 필통이나 문구류에 이름을 써달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늘 글씨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이름도 예쁘게 그려주면 그것 또한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늘 장래 희망 란에는 '화가'가 적혀있었다. 무형의 재능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그 짜릿함을 진작에 맛본 거다. 창작인이 느끼고 가질 수 있는 (동시에 다소 중독성이 강한) 카타르시스를 그때부터 경험한 거다. 



중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미술 시간은 즐거웠다. 꽤 다양한 미술 활동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두꺼운 도화지를 잘라 치약 상자를 만들어 포스터컬러를 사용해 표지를 그리는 과업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패키징 디자인의 초석이 되는 일인데, 얼마나 재밌었고, 잘 했는지 그때 만들었던 치약 상자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 그림은 '미술'이라는 교과목 중 하나로 그저 즐길 수만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성적을 위해 미술 학원에 등록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미술 학원은 단지 그림을 위한 기술을 익히는 학원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삐뚤빼뚤 미완성된 그림이 학원에만 갔다 오면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아주 근사한 작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한 엄마들의 각종 치맛바람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들의 경쟁에 단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다. 초등학생부터 나의 10대 시절 통틀어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엄마 모임'에 나간 적이 없다. 나중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그냥 싫었단다. 엄마가 치맛바람 경쟁을 싫어했던 것이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감정과 깨달음을 주었고, 나아가 신념 체계를 만든 것 같다. 중학교 축제 때 학생들의 그림을 몇 작품 뽑아 학교 벽에 전시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 그림 중 여러 장이 뽑혔다. 굉장히 뿌듯했지만, 학교에서는 그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가지고 와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내주었다. 동네 문방구에서 액자 몇 개 사다가 그림을 끼우면 된다고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림 사이즈가 상당히 크다. 그래서 그림 사이즈에 맞는 액자를 제작할 수 있는 업체에 맞춰야 한다. 동네 화방에 물어보니, 액자 값도 액자 값이지만, 그림을 후가공해야 종이가 울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액자 가격도 너무 비싼데, 후가공비는 더 비싸니, 고민하던 엄마는 그림 중 하나만 골라서 액자를 제작하고, 종이가 좀 울기는 해도, 그림을 보는데 큰 지장은 없으니 후가공 없이 하는 걸로 결정을 했다. 학교에 가져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모두 후가공해서 아주 깔끔하게 액자를 만들어 왔다. 그것도 여러 개를. 초라하고 어설픈 내 그림 액자 하나는 바닥에 놓였다. 인생에서 겪은 첫 무력감은 이렇게 나의 그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그 그림은 참으로 나였다. 나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 자체로는 부족했다. 그림만 잘 그리면 되는 게 아니라 맞춤 액자를 할 수 있는 뒷받침이 필요했던 거다. 우리 엄마도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우리는 그때 많이 가난했었고, 아니, IMF 시기를 겪고 난 우리는 모두가 가난했었고, 그래서 액자도 스스로 맞춰야지만 학교에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그림에 자신이 있었고, 좋아했기에 더욱 인정받고 싶었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이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높은 곳에 내 그림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내가 원하는 건 '경쟁'을 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고, 경쟁은 실력으로만 혹은 노력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동시에 알아버렸다. 그 당시 느꼈던 좌절과 슬픔은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지만, 참으로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러 함께 숨 쉬며 살아간다. 



살다 보니, 중학생 때 그린 그림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면에서 경쟁해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인생에 수많은 자잘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최대한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자리에 겨우 숨죽여 있다 보니, 혹은 경쟁에서 지는 방향을 골라 택하다 보니 결국에는 패배자의 위치에 서 있다. 인생 앞에 엄청난 무력감을 안은 채로. 당연한 결과다. 이것이 내가 가진 패배 의식이다. 패배 의식은 나를 더욱 바닥으로 이끌고, 더욱 나약한 인간으로 만든다. 답답한 마음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꼭 높은 위치에 그림을 올려야 하지? 바닥에 놓여 있는 그림이라도 내가 그렸고, 내가 사랑하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패배했더라도, 경쟁해 본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뭔가를 경험한 것만으로 된 거 아닌가. 지금의 나,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며 흔들리지만 아직 땅에서 뽑히지 않았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라며 - 스스로에게 묻는다. 패배자의 질문이지만 결국 인생에 진정으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묻는 지극히 궁극적인 질문들. 



거대한 삶 앞에서 더욱더 낮아지고 작아지고, 비로소 나약해질 때, 그때 사람은 깨닫는다.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서야 진짜 삶이 시작된다. 원하고 바라는 건 점점 줄어들고, 높은 곳에 그림을 올리는 건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진심으로 나를 깨워준 존재를 마음 깊이 느끼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삶이라는 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받아들일 때, 그때 인간은 진정으로 '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패배자인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온 갖 실패와 좌절, 모든 종류의 거절로부터 나는 인생을 배웠고, 이제서야 진정으로 '산다'. 패배자인 나는 목표도 꿈도 없다. 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더 잘 살고 싶지도 않다. 그저 오늘 밤 잘 자고 내일 아침 빛 가운데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그게 나의 목표이자 꿈인지도. 패배자의 인생에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나는 오늘부터 그걸 평안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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