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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아 Apr 02. 2023

홍콩 적응기 | 홍콩 2

지난 4년간 홍콩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이곳에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무르는 것을 거부해 왔다. 방학만 되면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고, 늘 홍콩은 내 집이 아닌 잠시 머무르는 일시적인 공간이었다. 격렬했던 2019년의 홍콩 반정부 시위와 그 직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홍콩은 내게 스트레스로 가득한 도시로 기억되게 된다. 2019년 홍콩에서의 첫 학기에는 최루탄 가스에 콜록였고, 그 이후 2년간 좁은 방에서 혼자 격리한 기간만 모두 합치면 세 달이 넘는다. 그 와중에 전 세계에서 모인 능력 있는 학생들과 경쟁하느라 자신감은 항상 바닥이었다. 어렸을 적 홍콩에서의 여유 있는 삶에 대한 기억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만들어 준 경험이 아니라 내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며 만드신 보호된 울타리 안의 경험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 나는 더 이상 이 도시에 살고 싶지 않았다. 홍콩은 내게 일시적인 공간이었기에 이곳의 짐도 인간관계도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길었던 팬데믹이 끝나며 나의 우울도 사그라들었고, 막학년이라는 현실이 찾아왔다. 따라서 나는 이번 방학에 처음으로 홍콩에 혼자 남기로 했다. 5년이라면 무려 내 인생의 1/5에 달하는 긴 시간인데 홍콩을 그저 일시적으로 머물렀던 곳 정도로 남기고 싶진 않았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해를 충분히 누려서 하나뿐인 대학생활을 보낸 소중한 곳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작은 <홍콩을 집으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홍콩을 내 집으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방을 꾸미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7년 반반이라는 기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온 나는 모든 짐을 합쳐도 캐리어 두 개가 넘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였다. 하지만 이케아에 가서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가구를 장만했다. 침대맡 독서 스탠드, 침대 쿠션, 선풍기, 그리고 샐러드 스피너도 샀다. 19층 내 작은 방도 조금 사람 사는 곳 같은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단계는 '외롭지 않기'다. 홍콩에서 지내면서 늘 한국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처럼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홍콩에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함께 다니는 친구 그룹이 있는 사람들에게 뻔뻔하게 같이 수업을 듣자고 했다. 기숙사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친구가 있으면 꼭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절실한 불쌍한 사람처럼 비칠까 봐, 그리고 그들에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고, 내가 먼저 다가가면 밝게 맞이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나중에 함께 밥 먹자며 먼저 다가갔고, 홍콩살이 4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밖에서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로컬 친구들도 생겼고, 수업과 수업 사이에 도서관에서 함께 코딩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마지막으로 알찬 방학을 보내기 위해  랩실에서의 프로젝트를 가이드해 주실 교수님을 찾았고, 비전공자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일에도 지원했다. 그 전의 나에게 홍콩대는 스트레스로만 가득한 곳이었지만 마음을 열고 보니 교수님들은 열정이 가득하셨고, 여러 교수님들이 그저 학부생 나부랭이인 나에게 랩실에서의 프로젝트를 제안해 주셨다. 프로젝트를 위해 논문을 읽고 알바로 코딩을 가르치며 매일매일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낀다. 내 능력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사실 수업 다섯 개를 듣는 것만 해도 정말 바쁘게 느껴지지만,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요리도 해 먹고 일도 하고 논문도 읽는 지금의 삶이 전보다 충만한 것 같다. 홍콩에서의 남은 일 년이 조금은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한국과 호주의 친구들에게도 홍콩에 놀러 오라고 잔뜩 말해두었다.


홍콩에서의 내 대학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보람차고 마냥 행복한 것만은 당연히 아니다.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아서 매일매일 할 일에 치여 허덕인다. 그리고 그중 많은 일들은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게 한다. 어제 새벽에는 또다시 요로결석 때문에 아파서 깼다. 응급실에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결석이 나왔다. 지금은 두 시간째 실행 중인 코드를 기다리며 역시나 새로운 노트북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내 코드가 별로인 것일까 고민 중이다. 그래도 이렇게 브런치에 주절대고 나면 복잡하고 정신없는 내 일상이 조금이나마 정리되는 기분이다. 영서와 가영이는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자' 라며 위로했고, 이 말을 되새기자 마음이 편해졌다.


기나긴 팬데믹과 대 2병을 지나 삶의 중심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홍콩에서. 그렇지만 올해가 끝날 즈음엔 이것도 그리워질 것이다. 홍콩에서의 생활이 힘든 만큼,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고 좋은 경험을 많이 쌓으면 된다. 2023년이라는 열정적인 고비를 함께 넘기고 있는 영서와 가영이가 행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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