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육아로 바쁠 예정입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FM대로 살았다. 정도를 벗어난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때가 되어 학교에 갔고, 흔히들 한다는 휴학 없이 대학교와 석사를 졸업했고,
20대 중반에 직장에 입사했고, 30대가 되기 전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적당한 신혼을 보낸 뒤 30대 초반에 첫째를 낳고, 복직하여 1년 반정도 일을 하고 둘째를 낳았다.
난 모두가 때가 되어 차례차례 스텝을 밟아왔을 뿐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요즘 세상에 너무 빨랐다.
초중고 대학/대학원을 통틀어 친구들을 봐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친구가 손에 꼽는다. 둘째가 거의 두 돌을 앞둔 지금에서야 첫째는 낳는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래서 내가 육아로 너무 힘들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다. 싱글이고,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에게 내 넋두리를 하기엔 공감을 받기도 어렵고 미안하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발팀에 속해 있어 남자 직원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근무하는 현 팀에 임신한 동료는커녕 육아휴직을 쓴 사람은 내가 유일무이하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안 그래도 무거운 '엄마'라는 이름이 주위의 이런 상황들 때문에 좀 더 무거워진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 후에, 주말에 리프레시하고 출근할 텐데, 나는 집에 가도 주말이 지나도 회복을 위한 시간이 없다. 다들 주말에 잘 쉬었냐고 안부를 물어보는데 매번 육아하느라 피곤하다고 대답하기도 지치고 눈치가 보인다.
옛날에 비하면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를 봐주는 기관이 있고, 조부모님이 계시고, 시터 선생님이 계시더라도, 아이에 관해 결정하고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은 결국 엄마이다. 아빠일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최종 결정권(?)은 엄마에게 있다. 회사에 와서 일을 하다가도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한테 가장 먼저 연락이 오고, 연락을 받은 엄마는 이리저리 동동거리며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급한 상황은 해결이 되었더라도, 아이가 아프다면 여전히 신경 쓰인다. 아이가 태어나면 만들어주는 아기수첩에도 엄마 전화번호가 먼저 쓰이고, 기관 지원서나 알림장 서명 란에도 엄마 이름과 번호를 먼저 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방접종 알림 문자나, 아이에게 이벤트가 있어 전달이 필요할 때 당연히 엄마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아이가 새로운 곳에 입학을 해야 하는 시즌이라면, 엄마는 또 바빠진다. 워킹맘이라고 내 아이 교육이나 학습에 소홀하고 싶지 않아,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으거나, 퇴근 후 상담을 하러 달려간다.
워킹맘의 상황이 사회적으로 당연히 배려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은 아니지만, 사회 인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미래 사회를 위해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누군가는 그 아이를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 의례적으로 대부분의 엄마들이 하게 되는 육아휴직과 워킹맘의 삶은 원래는 아빠든 엄마든 기관이든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낳고 싶어서 낳아놓고 불평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되는 인생의 참모습들이 많다. 평생 모르고도 살 수 있는 인생의 참모습을 아이를 통해서 배운다. 가끔 너무 힘이 들 때면 내가 뭐 하러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 싶다가도, 아이가 없었더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많은 상황들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어 본다.
그래도 여전히, 오늘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무겁고,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