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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tree Nov 10. 2023

[ 여행과 여행사이 ] 환상이 와르르 무너진 아를

아를, 프랑스

 ‘아를(Arles)’이라는 도시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에 있는 소도시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 미술시간으로 기억한다. 교과서에서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사랑했던 도시로 소개되어 있었다. 우선 낯선 단어의 어감이 주는 알 수 없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이후부터 그의 작품에 아를 도시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쩜 모든 작품이 그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게 크나큰 매력에 퐁당 빠지게 되었다. 이후부터 고흐와 아를은 내게 한 세트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아를로 떠나보는 계획은 약 20년 이상 나의 여행 버킷 리스트의 한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다. 고흐를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고흐와 아를의 팬이었기에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를 보면 첫 장면이 아를에서 시작하게 된다. 별이 빛나는 아를 거리의 카페테라스를 배경으로 영화는 이어진다. 영화에서 고흐는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햇빛을 찾아 남프랑스 아를에 정착하게 된다. 그 이유로는 색의 대조를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컸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엔 우중충한 파리의 모습과는 달리 남쪽의 강렬한 햇볕으로 아름다운 겨울을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이사를 한 이후 새롭게 바뀐 환경 덕분에 그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붉은 포도밭> 등 수많은 그림을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난 뒤 고흐와 아를을 동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더 커져나갔다.


 다시 또 시간이 흐르고 2023년이 되었다. 4년 전 결혼을 했지만 코로나라는 변수를 맞이하여 미루어두었던 신혼여행을 드디어 갈 수 있게 되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아이슬란드 오로라 등등 여러 후보지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직장인이기에 최대한 긴 연휴를 낼 수 있는 태국 신년 공휴일로 날짜를 먼저 지정했다. 4월에는 세렝게티, 아이슬란드에 가기엔 적합한 시기가 아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후보지를 찾아야 했다. 더욱이 남편과 나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미 둘 다 가 본 나라와 도시가 꽤 많았다. 결국 서로 아직까지 가보지 않은 지역과 도시를 찾았고, 그곳은 프랑스 남부가 되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아를’! 언젠가 꼭 가봐야지 했던 곳에 드디어 가게 된 것이다.


 4월의 아를은 조금 많이 쌀쌀했다. 태생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나는 거의 겨울 차림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래도 남부 지방이라 한낮에는 햇볕이 강했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노곤노곤한 기분이 여행하는 내내 좋았다.

 유럽은 주말에 대부분의 상점이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광장에서 플리마켓, 플라워 마켓 등 다양한 장이 선다. 니스를 거쳐 아를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일 이른 오전이었다. 덕분에 크고 작은 마켓을 아침부터 구경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스터(부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곳곳에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아를에 왔다는 자체만으로 기분이 내내 들떴다.


아를에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방문하는 카페테라스. 이곳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겨보려던 계획은 와르르 사라짐 ㅋㅋㅋ


 하지만 점심시간을 기점으로 아를 시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를의 유명한 카페테라스 거리에는 맥주와 와인에 취한 인파들이 큰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축제 기간임을 감안했을 때 당연한 모습이었지만, 내가 몇십 년 동안 그려온 아를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란 캐노피의 아름다운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을 먹으며 여유롭게 시내의 모습을 바라보려고 했던 계획은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이미 증발해 버렸다. 조금 속상해져 이내 시무룩해지자 남편이 <별이 빛나는 밤> 배경인 론강(Rhon)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이곳에 오자마자 아를에 대한 환상은 철저히 와르르하고 무너졌다. 고흐가 작품을 그린 다리 위에는 크고 작은 쓰레기와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론강 주변에 작은 유원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엄청났다. 역시 이곳에도 이스터 휴일을 즐기러 나온 가족, 연인들이 많았다. 그리고 놀이공원의 주차장에서 이어진 긴 주차 행렬은 이미 다리 위 주변 도로를 꽉 채워버렸다. 그곳에 경적 소리까지...


론강 옆의 의문의 유원지... 왜 내게 아무도 이 정보를 얘기해주지 않았나요 ㅋㅋㅋ


 그동안 몇십 년 동안 아를과 고흐에 관한 책, 영화 등 많은 콘텐츠를 봐왔지만 이런 스토리는 없었다. ‘왜 아무도 이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말해주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아니면 내가 아름다운 것만 찾아서 보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누군가도 아를의 낭만을 지켜주기 위해 그랬던 것이거나...?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래도 아를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기 전에 씁쓸한 마음을 안고 기록을 남겨보는 중이다.

 그래도 2주 동안의 프랑스 남부 여행은 아직도 내게 큰 여운이 남아있다. 기대와는 다른 아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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