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처하는 프로맞춤러의 자세
"너는 참 착하고 나한테 잘 맞춰줘서 좋아."
스물여섯 살까진 그게 맞는 줄 알았고, 쭉 그렇게 살아왔다. 이른바 착한 사람병.
친한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에 나는 웬만해선 다 수용해주고 맞춰 주던, 다 좋다고 하는 그런 무던한 친구였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 시절 3년을 내리 친하게 지내던 단짝 친구와 대학을 가며 절교했다.
그녀는 재수를 하느라 나와 1차로 멀어졌고, 나는 학교를 다니다 후에 어설픈 재수를 시작해서 2차로 그녀와 멀어졌다. 하지만 입시로 인해 생긴 둘 사이의 공백은 결단코 절교까지 갈 일이 아니었다.
수능을 마치고 진짜 대학생이 되자마자, 그녀는 내게 여행을 제안했다. 청춘의 상징 내일로를 타고 부산을 포함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자고. 무려 2주짜리 거창한 계획을 짜 왔다. 여행에 큰 뜻도, 흥미도 없는 나였지만 당연하게도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싫다'라는 의사표현은 프로거절러가 아닌 내게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자 목구멍에 걸린 퍽퍽한 고구마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게는 여행을 갈만한 여윳돈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후 한참을 고민을 하던 내가 여행을 못갈 것 같다며 조심스레 얘기 하자, 그 친구는 불같은 화를 내며 내게 의절을 선언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의절이라니. 절교라니? 이게 절교까지 갈 일인가? 싶으면서도 정말 눈앞이 새까매지는 기분이 들었다.
떠올려보면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나는 그녀가 하자는 것에 무엇 하나 거절이 없었다. 함께라면 뭐든지 좋고 머리카락 하나에도 까르르깔깔 웃었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자 해서 함께 쫓아다녔고, 야자를 나란히 제치고 매일같이 펌프를 하러 다녔다. 그 친구는 이따금 내게 이기적인 내 성격에 항상 잘 맞춰주고 따라줘서 고맙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가끔은 하기 싫던 그녀의 제안에 따르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다. 그 친구가 주는 고마움을 나는 기꺼이 내 행복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의절 선언'은 스물한 살 내게는 너무나도 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내가 살면서 보낸 첫 거절의 메세지가 곧장 파국으로 치달아서 때문일까. 큰 충격에 휩쌓인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에게 사죄의 용서를 빌었고, 여행에 대한 계획도 다시 짜서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내게 돌아선 그녀의 차가운 마음에는 그 어떤 나의 노력도 가닿지 못했다.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은 IMF 시절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처럼,
나는 자칭타칭 '가장 친한 친구'를 그렇게 허망하게 잃고 갈 곳 없이 방황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매일 밤 빠짐없이 그녀가 꿈에 나왔으며, 심지어 매번 내가 그녀를 쫓아가 다리를 붙잡고 애걸복걸하는식의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야위어가는 나를 가여워 하며 나와 그녀의 화해를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10년째 화해하지 못 하였고 우리는 여전히 남으로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보자고 하면 볼 수 있는 따뜻한 소수의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며 평범하게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으며, 지구도 멸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그런 친구로써의 우정을 마감한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렸다.
요즘의 내모습을 고찰해보면, 우선 친구들 사이에서 이른바 '비둘기'로 불리고 있다. *(비둘기=평화의 상징)
싸움을 싫어하며, 대립 또한 싫어한다. 의견 충돌은 사양이며 , 강력한 자기주장은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렇지만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좋고 싫음에 대해 그시절 울보보다 27%쯤은 더 또렷이 말할 줄 아는 서른 살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만들어 준 또 다른 내 친구는 가끔 내게 '옛날의 네가 참 좋았는데 , 요즘 보면 참 날카로워졌어 내 친구~'라며 때때로 시큼시큼 나를 찌르고 놀린다. 정말 친하니까 하는 얘기겠거니 , 그런 친구를 보며 나는 웃고 만다. 착한 것과 맞춰 주는 것은 다르다. 무조건적으로 상대에게 맞춰 주는 그런 '맞춤양복'같은 사이는 당신의 정서발달에 큰 도움도, 이득도 되지 못한다. 아마도 당신의 심신이 편하자고 상대에게 건네왔던 무조건적인 맞춤은, 먼 훗날 당신의 등에 칼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멍울을 만들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찔리는 프로 맞춤러가 있다면, 웃으며 상대에게 거절하는 연습을 하자. 거울을 보며, 혹은 집에 있는 고양이를 앉혀두고 당당하게 의사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자. 당연하게도 내 대답으로 인해 세상은 무너질 리가 없고, 상대방이 당신을 싫어할 리도 없다. 만약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과 언젠가 헤어질 그저 그런 사이였는데 조금 더 빨리 정리된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 이 이야기는 거창한 조언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그저 먼저 겪어 본 선배 맞춤러가 건네는 작은 넋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