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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Jan 09. 2024

해가 안 보이는 일출

잔망레터 


  한 해의 마지막 날, 부산 광안리에는 드론이 뜨지 못했다죠. 새해의 서울에는 해가 안 떴습니다. 아, 해가 뜨긴 떴는데... 보이지는 않았어요. 새벽 6시에 출발해 오른 응봉산 정상에서는 새해맞이 축제가 한창이었고, 인파들은 빼곡해 타인의 패딩 냄새에 취할 지경이었습니다. 누군가 하늘에서 우리를 봤다면 추워서 모여드는 펭귄 떼로 착각했을 거예요. 모두 휴대폰으로 곧 떠오를 해를 포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가수분의 '오 솔레미오' 라이브를 들으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출 시간 7시 42분이 되어도 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깜깜하던 하늘이 어느새 밝아왔는데 말이죠.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떠버린 것입니다. 눈앞엔 여명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포기하고 하산을 했어요. 해는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망에는 아랑곳없이 얄밉게 기척 없이 떠버렸습니다. 이렇게 새해는 인간들의 호들갑과는 상관없이 고요히 시작해 버렸죠.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는데... 아쉬웠지만 은근히 마음이 편하기도 했어요. 다 같이 공평하게 해를 못 본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새해를 맞아 겸허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자연은 우리 뜻대로 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더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수록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만 빨라지고... 다시금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매일 조용히 뜨고 지는 해에 발맞춰 순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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