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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Jul 06. 2024

[책] 유리 예고로프의 이탈리아 일기 1976

His complete original diary, Italy 1976

유리 예고로프의 이탈리아 일기 1976

1976년 구 소련 대표로 이탈리아 국제현대음악축제 콘서트에 초정을 받은 22살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는 죽음을 무릅쓰고 망명신청을 합니다. 네덜란드의 정식 여권을 받은 후 그는 3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의 망명으로 그의 스승은 심한 고문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유를 찾아 망명을 선택하도록 이끈듯합니다. 만약 나에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자유를 빼앗아간다면 나는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진짜 예술(내가 생각하는 '아도르노'의 '자연미'와 통하는...)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사진을 선택했는데, 사진 활동을 못하게 한다면 난 죽음을 무릅쓰고 '사진 찍을 자유'를 찾아 나설 수 있을까? 


이탈리아 난민캠프에서 써 내려간 그의 고통의 일기가 안목출판사를 통해 번역출간되었습니다.


사진 전문 출판사인 안목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은 언제나 저를 집중하게 합니다. '사진'이 아닌 '피아니스트'에 관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더 관심 있게 살펴보았죠.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받기도 하고 늘 고민하고 있지만 표현 수단으로써 '사진'에 매몰된 고민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와 피아노, 그와 음악 사이엔 어떤 의식적 관념도 끼어들 공간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맞닿아 있습니다. 그가 피아노이고, 그가 음악이었습니다. 임윤찬을 통해서 저는 진정한 움직임 (Authentic movement)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역시나 임윤찬이 좋아하는 음악가였습니다. 책에는 임윤찬이 그에 관해 언급한 인터뷰 내용도 실려있습니다.


"유리 예고로프가 러시아에서 망명 후 뿌리내린 암스테르담에 꼭 가보고 싶어요. 그의 명연주는 거의 다 암스테르담 시기에 이뤄졌어요. 비록 불치병으로 인한 짧은 삶이었지만, 이 연주자의 위대함을 직접 그 도시에 방문하여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임윤찬, <객석>, 2023년 5월호 인터뷰


전 사진을 하면서도 '사진적 행위'를 그리 연습하지 않아요. 매일같이 기계적으로 손님들의 사진을 찍긴 합니다. 의식의 개입이 없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찍는 행위가 어쩜 유리예고로프와 임윤찬의 연주와 형식적으론 닮아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 그걸 통해 자유를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그런 사진 찍기는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맘으로 사진을 찍으니 진정한 사진적 행위는 결코 아니죠. 가끔은 저도 임윤찬이 반클라이번 대회 우승 후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처럼, 산속에 들어가서 사진만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카메라와 내가, 나와 사진이 그냥 붙어있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필름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카메라(니코매트 수동 필카)가 내 맘을 알아주는 진짜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죠.


이 책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 [옮긴이의 글, 95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예고로프의 연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그의 음악에선 테크닉을 느낄 수가 없다. 왜냐면 유리는 그가 연주하는 음악 자체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건, 고통을 감내하는 그의 능력이다."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테크닉을 느낀다는 건 의식이 개입했다는 걸 말하죠. 의식의 개입 없이 음악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때 공명하고 진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이럴 땐 말대신 눈물이 나죠.


'눈물은 눈동자로 말하는 고결한 언어이다.' [로버트 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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