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혜인 Apr 12. 2020

성공하는 순간이란

찰나의 감정을 선물 받는 순간


 스터디원 중 한 명이 제작사에서 일하게 됐다고 더는 스터디에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스터디 기간 동안 꾸준히 만났던 분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취업을 했다는 거에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큰 관문을 넘었다는 생각을 할 그 찰나의 감정 상태가 부러웠다. 지금부터 출근하기 전까지의 며칠간은 정말 꿀 같은 시간의 연속일 것이다.


 마치 과거의 어느 한 지점을 보는 것 같다. 세상에는 일찍 이룬 꿈이 있고 늦게 이룬 꿈이 있다. 원하던 것이 아니더라도 원했던 분야에 남는 선택을 하는 것과 원하던 것이 아니면 그 분야에 머물기 어려워서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있다. 사실 뭐가 더 좋은지 모르겠다. 그만큼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어릴수록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좀 더 나은 삶을 만들어보겠다며 가진 것을 과감히 버릴 기회를 먼저 본다. 혹자는 도전이라고 말하며 멋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과연 그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불확정적인 영역으로 내쳐진 젊음은, 그 영역에 머무는 동안 끊임없이 확정적인 영역에 들어갔던 자신의 환영에 괴로워해야 한다.


성공은 확정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확정적 영역에 들어간다는 건 곧 정체된 채 움직이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들어가는 순간은 좋을 수도 있겠지만, 머물다 보면 갑갑하기도 하고 더 나은 환경을 꿈꿀 수밖에 없다.


 다만 조금 늦게 그 영역에 들어갔기 때문에 박차고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잃을 것을 생각하며 버티는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 영역에 조금 일찍 들어가게 되면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을 생각하며 나오는 선택을 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여기서 어떤 선택이 더 옳은 선택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버텨서 좋은 때를 만나거나 버린 뒤 좋은 때를 만나길 기다린다는 건 그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확정적인 순간을 소망하는 것일 뿐 그 본질은 같다.


 그 본질은 아마 찰나의 설레는 순간일 것이다. 그 찰나의 폭발적인 설렘이 그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인내해 온 모든 순간을 보상받는 느낌을 준다. 그렇기에 확정적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곧 성공을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성공의 진짜 의미는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무엇을 하든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점점 늘어나기에.


 그 장애물이 더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더는 가로막지 않을 때가 성공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을 만날 때마다 찾아오는 찰나의 설렘을 만끽하는 감정을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일 테다.


 그 찰나의 순간이 내게도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