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랜 친구에게 연락했다. 고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동안 한 번도 가깝게 지낸 적 없는 그런 친구. 그런데도 어떻게 지내는지, 뭐 하고 지내는지 알았던 이유는 그녀가 공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다 할 함께한 추억이 없는 친구였지만 어찌 보면 어색할 수 있는 사이인데도 친구는 굉장히 반갑게 내 연락을 받아주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가는 길이 참 달랐다. 친구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었고, 나는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이 가고 싶었다. 친구는 고등학생일 때부터 여러 가요제에 출전하고 무대에서 상을 휩쓸고 다녔었다. 그런 삶을 동경하면서도 나는, 입시가 바쁘단 이유로 그런 마음을 애써 누르며 살았다.
그래서 더 친할 기회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거의 십 년 만에 연락한 사이지만 이렇게 기꺼워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고등학교’라는 공통분모 덕분일 테였다.
비록 함께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는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같은 환경 속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 기억 속에 서로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기에 마냥 멀기만 한 사이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였다.
그 친구는 음악을 해왔던 친구였고, 남자 친구가 마침 음반 제작 사업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음반을 제작해보자고 제안하려고 연락을 했던 게 문제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 친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신이 나서 친구의 생각을 듣기도 전에 본론을 다 얘기해 버리고 말았다. 친구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때까지 잘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이러이러한 일을 해볼 수 있으니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말이었으니, 친구에게 내 마음이 왜곡되어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진심도 측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0년 넘게 그 업계에 몸담아온 친구가 그 업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었을 수도 있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이러한 나의 제안이, 친구에게 실례가 되었던 건 아닐까. 친구가 내 마음을 오해하게 되었던 건 아닐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부재 때문에.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친구가 내 얘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물어보는 것도, 그에 대해 뭐라고 다시 해명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나의 진심을 담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