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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Sep 10. 2020

나 자신을 마주하다

꿈에서 깨어나고 얻은 것들


 꿈을 놓은 지금에 와서 꿈을 품어 온 지난 시간 동안 알게 된 것들을 한번 적어볼까 한다.


 최근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일을 그만두고 가장 꿈꿔왔던 순간들을 만끽하는 중이다. 아, 진짜 이렇게 길고 긴 휴가 같은 시간은 처음이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이 시간은 나에게 소중하고, 또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태껏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상상한 그 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시간을 보내왔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느끼는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서점을 갈 때마다 왕왕 눈에 보이는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이야기다. 10년 전만 해도 ‘모든 인생을 걸 과업을 찾아 임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게 자기 계발서의 주요한 내용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는 모두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더 좋은 인생, 더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서 허황한 상념들로 자신을 허상의 누군가와 경쟁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옭아매며 채찍질하는 것을 훈련하며 살아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다.


 처음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원하는 ‘일’이 아닌, 원하는 ‘삶’이 무엇이었을까? 지금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 데에는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이 있기 때문일 테다.




 우선, 나는 떳떳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나 자신에게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삶. 뭔가를 감추지 않아도 되고, 현재에 진실로 만족함으로써, 매일의 충만함을 느끼는 삶.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충만함을 느끼기 위해서 매 순간 치열하게 사는 삶을 원한다. 여태껏 그런 삶이 일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둘째로, 비굴하지 않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동안 마음은 항상 허했고, 주머니는 항상 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쉽게 얻은 기회도 쉽게 놓지 못했다. 쉼 없이 매 순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왔다. 꿈을 좇는다고 생각했지만 꿈을 좇았던 게 아니다. 실체가 없는 누군가에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저 버티는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나는 그걸 끝없이 고민해왔다. 내가 꿈꿨던 일을 하는 게 아니라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이름 있는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서?

   

 그 모든 이유를 떠나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 말을 함으로써 관계가 틀어질 것이 두려웠고 관계가 틀어졌을 때 그 뒷감당을 지혜롭게 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할 말을 하고 흘러가는 상황을 조율하는, 혹은 흘러가는 상황을 그저 내버려 두는 경험을 해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귀찮은 일은 피하고, 화나는 일은 순간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 그 결과, 마음에 켭켭이 쌓인 응어리는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고, 사람들과의 분란은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그런 게 내가 원했던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힘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상황이나 위력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떳떳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비굴하지 않으며 당당할 수 있도록. 이게 진짜로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라는 걸 느껴가는 중이다.




 행복은 꼭 꿈꾸는 일을 통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행복이 스스로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최근 보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와 닿았던, 개그맨 김숙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그것을 진짜 원하는지는 그것을 가져보면 안다.”


 지금 좀 느린 것 같아도, 느린 것이 아니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경험을 하나 더 한 것이니까. 진짜 성공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내가 가진 것과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들을 내가 원하는 그 삶이 펼쳐질 수 있도록 필요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꿈을 놓아버린 나를 보듬어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꿈을 움켜쥔 시간 속의 나는 참 아등바등 살았다. 떳떳하지 못했고, 비굴하였으며,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시간을 참아왔다. 하지만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아직 힘들지만, 마음은 전보다 더 편하다. 진짜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에는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나 과정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힘이 있다. 도전이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면, 그건 정말 원하는 삶을 위한 도전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여정의 끝이 이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끝도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피디가 된 건 아니지만 내가 어떤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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