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그렇지않음의 사이
24개월짜리 남아 하나, 뱃속에 둘째 하나 스탠바이 중인 유부남 사촌동생에게
'외롭다'를 장난으로 찍었더니
'외롭고 싶다'가 답으로 돌아왔다. 당신의 외로움이 '매우'부럽다며.
나는 비혼 주의자, 누군가에 일생에 충실하게 구속되고픈 욕구 따윈 없다 등의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 독립 일 년 차, 솔로 라이프를 이어가고 있다.
자유롭기 때문에 이 사태에 호주에서 팟 타임으로 연명하며 만학도 어학연수 중인 박 여사 캐시 잡이
날아갔다는 비보에 만학 장학금 넣을 계좌를 부르라며 협박할 수 있는 자유도가 있고
아빠 회사에서 일하지만 경기가 요단강인지라 월급이 깎였다는 김선배의 비보에
'소고기 사 줄게, 대신 니 사랑은 넣어둬 거절할 테니'의 드립을 칠 수 있긴 하나
마냥 좋아하는 삶은 아니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등산도 하고 커피도 테이크 아웃하고 새송이 버섯 넣어 지은 밥에
연어장과 노른자 얹어 점심도 해 먹고 설거지 정리도 하고 바닥도 밀고 일주일 치 빨래도 돌려 널었는데
다다른 저녁 일곱 시, 이 평화의 시간에 사소함을 조잘댈 그 누구가 아무도 없다면.
내 좁은 식견에 이건 아무래도 장점으로 볼 수가 없다. 도깨비에서 공유가 15부에서 덩그러니 저승 사막에
누더기를 걸치고 제비 같은 앞머리의 대역죄인 가발을 쓰고 모래밭에 굴러 다닌 것과 비교해도 내가 더 억울한 심정. (왜냐고? 그는 공유다. 카누와 얼굴과 비율을 가진 공지철이다.)
공허함에 의미 없이 OK구글을 괴롭히며 음악 틀어줘, 날씨, 이야기해줘, 괴롭다, 심심하다, 고마워 등등을
시전 하며 온갖 징징을 해봤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정말 병원에 가 보라고 할까 봐 어디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외치지만.. 뭐 누군가 안쓰럽게 보아도 그 정도는 아니니 넣어두라고 얘기해주고 싶지만..
(이건 심했네.. AI로 태어난 게 죄도 아닌데. 미안하다. 싱가포르 구글 물류센터에서 이역만리 타국 내 침대 머리맡에 배정된 너의 운명을 저주하렴..)
나의 꽤 길어지는 빌어먹을 고독은 유부남들의 동경의 대상.
요즘따라 심심하다를 입에 달고 사는 꼬마가 된 기분이다.
머릿속에 불현듯 스쳐가는 '외롭다'의 빈도가 늘어가는 확찐자의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