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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구름 기린 Nov 06. 2020

관계를 받치는 사소함에 관하여

끊임없는 회색지대

 태생적인 단단한 암반 위에 세워진 무언가가 아니라면, 구조는 사소한 모래와 흙 위에 쌓이는 게 일반적이고, 작은 무언가 들이지만 이 사소함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전체의 구조가 영향을 받는다.

 

 관계도 비슷하다. 돌 위에 쌓인 것 같은 부모 자식 간이 아니라면, 살아가면서 생긴 큰 의미의 관계들도 사소함에서 시작되어 그것들이 커져서 서게 된 것들. 시작은 사소한 너의 예쁨과 나를 향해 웃는 미소에서 시작되지만, 그것들이 어느샌가 삶의 큰 의미와 중요도를 가지게 된, 그 기저에는 사소한 것들이 큰 구조를 받치고 있다.


 나의 관계들에는 그 사소함이 중요하다. 정확히는 사소함을 공유하는 태도가 그렇다. 상대의 그런 태도는 저 이에게 내가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근거이자 그가 이 관계에 대해 가지는 행동양식과 태도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고, 가장 크게는 나에게 큰 의미가 된 관계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만들어준다.

 

 하나 매일의 사소함은 공유되기 어렵다. 우리 각자의 나를 포함한 것 외에 많은 변수와 스케줄, 가장 근본적으로는 결국은 각자이기에, 다른 존재이기에 항상 마음에 와 닿게 충족하는 사소에 관한 연결은 없다. 오늘 터져나가게 바쁜 일도 있고, 마음이 고단해 손가락 하나를 까딱할 여유가 없을 때도, 아니면 그냥 연락하고 대화가 오가는 행위 자체가 부담스럽고 고단한 때가 있다. 나도 너도.


 어제로 돌아가서 상대는 원래 올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지만 그 와중에 고맙게도 상대가 욕심을 내서 시도한 상황인 것도 알고, 결국은 오지 못했다. 만나지 못한 것에 섭섭하지는 않다. 다만 1~2시간 새에 당신이 오게 되지 못한 그 이유들에 대한 사소함. 그것들의 전개와 상대의 마음이 나는 어제 궁금해졌다. 늦은 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식사를 함께하며 자정을 넘겨가는 스승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라고 정리하다 문득 이번에도 결국은 별일 없겠지 싶긴 하다. 한두 번 겪으면서 보아온 내가 아는 상대는. 

 나의 연애는 끊임없는 회색지대에 대한 물음인 듯하다. 관계가 깊을수록 소중해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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