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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구름 기린 Dec 05. 2020

트리를 만지며

은퇴한 산타클로스의 연말

연례행사인 12월 초입에 회사 로비에 트리 꺼내 만들게 되는 시즌이 왔다.

남들 미관을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해 놓은 결과물을 사진으로 저장하게 되는.

개인적으로는 생일의 초입과 크리스마스, 연말로 이어지는 계절.


개인적인 감상은 따듯하다기보다 뻥하니 뚫린 가슴이 온다.


마지막으로 설레고 좋았던 연말은 아주 예전 아마 5학년 즈음.

목사인 작은아버지 교회를 다니던 나는 인천에서 예배를 보고, 작은 아빠/엄마의 고집에 따라

그때 어지간한 교회들이 하지 않던 캐럴을 부르며 각 가정을 도는 일을 사촌형제들/교회 형 누나들과

12시 너머까지 했었다.


인천에서 한 시간을 달려 마지막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완자를 직접 빚어 만든 햄버거와 따듯하게 마일로 코코아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겨울이라 휑해진 뒷마당 잔디를 뒤로하고 슬레이트 처마 집 현관에서 부르던 

시린 밤공기에 퍼지던 캐럴의 화음, 시골집의 어렴풋한 기억.

엄마가 함께 한 마지막 크리스마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가는 그 와중에도 엄마는 최소한의 충실함을 가지고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대했던

부모의 따듯함과 설레던 연말의 기억.


엄마가 떠나고 공허해진 연말을 채우기 위해 나는 산타가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오는 입체카드를 그렇게도 사모으고 같은 반과 인척에게

뿌리는 것으로 채웠고, 교회에서 선물 교환할 때 쓸 아이템에 에너지를 쏟다

학교 앞 문구사에서 가슴을 누르면 마카레나 노래가 나오는 앵무새를 발견하곤 

누를 때마다 웃겨서 이걸 누군가에게 준다는 사실에 설레고 뿌듯해하던 캐릭터.

학교에서는 Day 때마다의 초콜릿이었고, 회사 신입 때는 빼빼로였으며 

나이 들어서도 동네 시집 안 간 선배들을 위한 로쉐돌이 행세가 그랬다.


그럼에도

내 12월은 가끔씩 수분 빠진 겨울의 대기처럼 건조한 계절이 되었다.

그런 노력들의 무의미해진 지금은 더욱더.


산타가 아닌, 그저 공허를 산타같이 메우려던 아이는 아직 덜 자랐고,

뻥 뚫린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지 모른 채 

루돌프와 선물 배송에서 은퇴하였다. 재취업은 기약 없이.


은퇴라면서 또 누굴 위해

방 한구석 준비되고 있는 캐런 잔과 위스키 팩은 무엇인지.


싶다가, 뭐 나만 그렇겠나 다들 모르고도 넘기고 혼자 조용히 넘기게되는

그런 날들 지천일텐데.


어쨌든 올해도 맞이한 37살의 생일 전야.

잘 버텼고, 그래 버틴 것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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