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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구름 기린 Dec 12. 2020

늦은 숙제

많이 밀린 탐구생활

계획을 잘 지켜 숙제를 밀리지 않는 타입은 아녔다.

기억나지 않는 날씨를 추정해서 채워 넣으며 느끼는 찝찝함의 밀린 숙제들의 기억.


거의 뿌리만 남았을 정도로 썩어버린 한쪽 사랑니가 있다.


나는 어금니인 줄 알았지만, 몇 년 전쯤 치료하다 알게 된 건 양쪽 하악에

사랑니가 있고, 어금니와 붙어서 같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


치아 사진을 놓고 의사 설명을 듣다가, 한쪽은 치료하다 만 흔적이 있다는 얘기에

오래된 기억이 났다. 중학교 생쯤 아버지 친구라던 치과에서 돈 안 내고 치료받았던 기억.


매번 계산 없이 다니던 게 계면쩍었는데, 그쪽에서도 커버해주기 힘든 비용이 나오는 부분이 생길 때쯤

내게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집에 얘기를 해 봐라'


집에 얘기를 못 했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지내는지 내 중학교 등록금도 제대로 못 보내

누나가 아버지에게 전화하라면 나를 닦달할 때,

부모도 아닌 나를 먹이고 가르치는 누나에게 얘기할 일도 아니고.


그때부터 그냥 은근한 치아의 통증은 그냥 당연한 일이 됐고

쌓이고 쌓이다 얼마가 나올지 모르는 치과비용은

그걸 더 당연하게 만들었다.

 2년 전 꽤 큰 비용을 내고 일정 부분 치료하기까지.


통증의 불편함 보다, 상한 이는

나이를 먹었음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 느낌을 부끄럼을 주곤 했다.


독립하지 않은 것, 상한 이를 처리하지 않는 두 가지.

서른 중반이 넘어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때가 되었음에도

미뤄놓고 있는 숙제 느낌에 나를 부끄럽게 하는 지점들.


비슷한 나이에

누구는 결혼이나 전셋집 마련이, 또는 아이 가지는 일이 그러했겠지만


얘기하면서도 사소한 그 일들을 치우던 서른의 중반,

나는 어른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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