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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구름 기린 Jan 04. 2021

온도

안녕

커피 얘기에 생각난.

마지막 즈음
당신에게 느껴진 온도는

즐거움보단 굳이 버리지 못한 관계에 미안해만 하는 너,
그 온도는 미적지근하게 식어 경기하듯 목으로 넘어가는
때 지난 자판기 커피와 같았다.

식어가는 사체와 같은 우리 관계 앞에
나는 안녕을 고했다.

너는 식어갔고, 나는 너의 부재에도
너의 흔적에 얼굴을 비비며 그렇게
너와 내가 낳은 관계에 온기를 불어넣으려
애를 썼었지만, 말 그대로 애를 쓴 일이었다.

식어가는 너
미약하지만 느꼈던 온기는 일방적인 내 체온이었다.
그걸 인정한 순간, 나는 그간 알아왔던 바 대로
네게 안녕을 고해야 했다.

내 삶에 이 관계가 들어온 후 나는 내 시간을 당신으로 채웠지만
끊임없이 성취를 원하는 네게 그런 나는 점점 빛을 잃었다.

안녕을 고하고 나서 마음에 빈 공간에 몸부림쳤지만
후회는 없었다. 네가 말 한마디 없던 그 침묵의 시간에
나는 못 주어서 후회할 기억 따윈 남기고 싶지 않아
생각하는 모두를 주었기에.

공허있을지언정 미움도, 뭣도 없이

그냥 비어버린 마음만 있었다.

생각해 보면 멈춰야 했고,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네게 해주고 싶던 일들이 나만을 위한 자기 위로가 되기 전에.
그게 지금이었고 그것을 직시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퇴색되기 전 매듭을 질 수 있었던 축복이었고.

우리의 여행은 여기까지이다.
너에 관해 눈에 보이는 모든 흔적은 치웠지만
그렇다고 네가 싫지는 않다.

힘듦은 있었지만 서로 큰 상처와 감정의 손상 없이 짧은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 네가 내 삶으로 들어오면서 풍요로워진 내 방의 풍경들, 감정들.

너는 지난 나의 몇 달간
매우 아름다운 내 이야기의 큰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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