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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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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Jan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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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가 소멸 될 예정입니다

일어나. 일곱 시 오십 분이야.


몸을 돌려 아이를 흔들며 말했다. 목이 잠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겨우 들어 올리고 있는 눈꺼풀 아래 눈이 뻑뻑해 다시 감고 싶었다.


오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확인한 마지막 시각이 세 시 삼십칠 분이었으니 아마도 네시쯤 잠든 것 같다.


잠.

왜 잠이라고 하지?

어떻게 잔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을까? 왜 잠을 자는 걸 잠에 든다고 할까?

잠 든다.

번쩍, 장미란 선수가 용맹하게 역기를 잡아 올리듯 드는 건 아닐 거고.

내가 버선발로 사뿐, 잠이라는 문틀을 넘어 스르르 빨려 들어 가는 걸까 아니면 잠이 내 안으로 자비 없는 자객처럼 침입해 들어오는 걸까?

매일 이런 생각으로 잠 못 드는 건 아니다. 보통은 핸드폰을 들고 의미 없이 남의 인스타그램을 탐닉하며 귀한 수면 시간을 아낌없이 허비한다. 어쨌거나 드는 것이 버선발이던 자객이던 요즘의 나는 문틀을 넘지 못하고 자객은 실력이 하찮다.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된 건 한 달도 더 지난 11월의 어느 날부터였다.

연말을 앞두고 항공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12월 31일을 기해 소멸되는 항공 마일리지에 대한 안내 문자였다. 남편도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았고 우리의 마일리지를 합산해 보니 꽤나 많았다. 절대로 소멸되도록 둘 수 없었다. 남편이 일정을 확인하더니 일주일 정도 시간을 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순간 머릿 속에서 아이가 학교와 학원을  빠질 수 있는 요일과 기간, 체험학습을 내야 하는 날짜까지 계산이 끝났고 우리 세 사람이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여행지 몇 군데가 추려졌다.

 

- 치앙마이 어때? 얼마 전에 은유네가 가족여행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대.

- 그래? 너 가고 싶으면 가자.

- 응. 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너도 태국 가고 싶어 했잖아. 베트남을 또 가긴 좀 그렇지 않아?

- 응. 베트남은 가지 말자.

- 그럼 치앙마이 고? 너 어디 다른 데 가고 싶은 데 있어?

- 아니 딱히 없어. 근데 너 파리 가고 싶어 했잖아.

- 어? 야, 파리는 우리 마일리지로 한 사람 왕복하면 끝나. 연말이라 일반 항공권 비싸고.

- 그럼 혼자 갔다 올래? 내가 일주일 동안 진서 볼게. 너 올해 병원 다니느라 힘들었잖아.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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