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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행성 Sep 20. 2024

인생의 동굴을 지나가는 동생들에게

너무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동생들이 있을 것 같아서 내 흑역사들을 나눠. 보고 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더 암울한 날들이 시작됐어. 그땐 미술작가여서 컴백하고 5년쯤 후에 개인전 열었었는데, 그때 전시를 위해 쓴 글을 보니 얼마나 다운되었었는지 새삼 다시 알겠어 ㅋㅋ  한 번 읽어볼래? 부끄럽지만 그때 그렸던 그림도 같이 올려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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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천천히 착륙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아직 잠이 덜 깬 채 낮은 하늘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온통 포근한 하얀색이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부모님은 열 달 사이, 십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을 한 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온통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나 역시 엄마와 아빠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낡은 차에 꾸역꾸역 짐을 싣고, 생전 처음 가 본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하늘을 덮고 있는 고가도로 밑 8차선 도로. 그리고 그 바로 옆, 쓰러져가는 단층 주택의 대문을 열면서 엄마는 우리 가족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이 ‘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해야 했는지 겸연쩍은 표정으로 설명했다. 이 집을 구하기 전 열 달 동안 대체 엄마와 아빠는 어떤 환경에서 살았던 걸까. 엄마 친구의 먼 친척이 살다가 병을 얻어 요양을 가는 바람에 비게 되었다는 이 집은 대낮에도 햇볕 하나 들지 않았고 한겨울임에도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축축하고 찜찜한 질병의 냄새.

매일 밤, 담벼락 너머로 육중한 화물차들이 내달릴 때마다 그 진동 때문에 온 집이 흔들려서 자다가 깨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옆의 고물상에 살고 있던, 정신이 이상한 아주머니가 밤마다 대문 앞을 서성대며 중얼거리는 소리에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나 홀로 열 달간 머문 뉴욕은 화려하고 풍요로운 한편, 더없이 삭막한 도시였다.

거기서 그악스러워질 대로 그악스러워진 채 한 살을 더 먹고 돌아온 나에게도 이 집과 환경은 적응하기 괴로운 극기 훈련 같았다.

“나와 내 가족을 둘러싼 환경”외엔, 세상의 모든 것이 열 달 전과 다름없이 너무나 잘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도, 지인들과도 공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집은 그렇게 한동안 나를 꽉 얽매고 있었다.


매일 학교와 아르바이트하는 장소를 오가며, 버스 차창 밖으로 늘 정신없이 수많은 집들을 바라보곤 했다. 동네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주택과 아파트들. 그리고 새로 공사 중인 대단지 아파트들. 저 많은 공간 중에 왜 내가 들어가 쉴 한군데가 없을까?

집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며칠에 한번씩, 아빠는 소매 끝이 반질반질해진 캐시미어 재킷을 걸치고, 손수 주유소까지 가서 무거운 통 가득히 기름을 사오곤 했다. 배달을 시키면 되지 않냐는 물음에, 배달을 시키면 기름통 끝까지 가득 넣어주지 않는다며 그 춥고 캄캄한 길을 굳이 걸어서 다녀왔다. 그러면 그나마 온기가 도는 작은 방에서 눅눅해져 무거워진 이불을 덮고, 우리는 그 해 겨울과 봄을 넘겼다.


이제는 그 집도,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집들 중 하나가 되어 기억으로만 존재하고, 지금 나는 다른 공간에서 또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기억이 결코 아프지만은 않다. 그러나 집에 대해 가지기 시작했던 복잡한 생각들은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집’과 특별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있어 집은 역사이며, 휴식이고, 은신처이기도 하고, 상처의 굴이기도 하고, 부의 척도이기도 했다.


J는 이사를 앞두고, 욕실 바닥의 깨진 타일 조각과 구멍 난 방충망도 아쉽고 애틋하기만 하다.


남부럽지 않을 럭셔리한 집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한때는 너무나 아름다웠던 P- 이제 그 집에서 탈출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비밀에 쌓인 집에서 상처받은 채로 한동안 성장을 멈추었던 S- 어렵게 용기를 내어 드디어 그 곳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와 넓은 세상을 누볐던 무용수 M- 이제는 눈이 먼 안마사가 되어 작은 오피스텔서

우연히 찾아온 젊은 무용수의 아픈 근육을 주물러준다.모든 사람의 인생은 리얼한 드라마이고, 그 드라마는 늘 그들이 속한 집과 함께 한다.


그 속에서 자신은 각자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우리는 그들의 드라마 속에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가끔 출연할 뿐이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둘러싼 네 개의 벽 안에 개인들의 삶은 그 곳에 켜켜이 쌓여,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번 전시는 집에 대한 나와 그들의 단상이며, 스스로와 그들의 계속 될 삶에 대한 진심어린 위로다.


그 어떤 심오한 철학과 개념보다도 나에게 가장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의 “삶” 자체인 것이다.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늘 자기 삶의 한 중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의 방향이 맞는 건지 수백 번, 수만 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내 삶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우주와 사회를 아우르는 심오한 철학과 개념을 화면에 풀어내기에는 솔직해질 자신이 없다.

평화를 말하기엔 내 마음이 완전히 평화롭지 못하고, 사회를 선도하기엔 내 삶이 아직 본이 될 만하지 못하고, 우주에 대해 말하기엔 나는 너무 작다.

어떤 그림을 왜 그려야 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의 답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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