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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행성 Sep 22. 2024

예언과현실사이

친구 어머님은, 앞으로 궁금한 게 있어도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어. 혼자서 다이다이로 기도해서 답을 얻으래. 나를 온통 물음표로 만들어 놓으시고 말야.

그리고 얼마 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진행했었던 미술 경매 파티에 오셨던 손님 중 한 분이 연락이 왔어. 자기 브랜드가 있고 매장이 있는데, 거기 한 번 와달라는 거야.

무슨 일인지 궁금했어. 가봤더니 40평쯤 되는 매장 안에 샵인샵처럼, 두 평 정도 되는 작은 전시 공간이 있었어. 그 대표님은, 자기 브랜드가 아티스틱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거기 그런 공간을 만드셨대.

근데 매번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나보고 그걸 좀 알바로 맡아줄 수 있냐고 하셨어. 뭐 그 정도 일이야 나한텐 껌이었지. 주변에 널린게 젊은 작가들이잖아. 그래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어.

근데 막상 가보니까.
아... 공간이 너무 아닌 거야. 아무리 두 평짜리 공간이라지만. 그 공간이,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열어줄지는 몰랐지.

일단 내 생각엔, 거기 매달 비용을 들여 전시한다고 해서 그 브랜드가 감각적이거나 아티스틱하다고 느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았어.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은 내가 쇼핑을 엄청 좋아해서, 대학 들어가자마자 알바도 많이 했고 + 집에서 받은 용돈 + 재료비 삥땅 하면, 매달 정말 큰 돈을 쇼핑에 탕진했었어.

집이 망하면서 이후에 그렇게 탕진은 못했었지만 틈 날때마다 구경이라도 했어. 잡지도 종류별로 다 봤었고.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정말 너무 좋아해서 한 일이야.

내가 이래뵈도 아싸라서 학교에서도 수업이나 채웠지 교우들이랑 활발하게 어울리지 않았거든. 근데 학교 앞 온갖 옷 가게, 신발 가게, 화장품 가게, 소품 가게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학교 앞 뿐이었을까? 압구정동 명동 할 것 없이 내가 베프들이랑 나타나면 '아 쟤네 또 왔구나' 했을 거야. 그 돈을 안 쓰고 모았다면... 분명히 강남 아파트 한채는 갭투자로 사놓을 수 있었을 걸.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 사시 붙었을지도.
정말 많은 비용과... 시간을 거기에 쏟았다. 미친 애 처럼. 어찌보면 미술보다 거기에 더 시간 많이 썼을 거야.

특히 그 시절엔 온라인 쇼핑이 없었잖아. 그러니깐 다 발로 돌아다녔지. 그래서 국내 들어온 중 모르는 브랜드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도 다 알았다.

이런 지속적인 덕질 중에, 나에게 작은 초능력이 하나 생겼더라고. 뭐냐면, 어떤 종류든 샵을 보잖아? 그럼 1-2초 스캔만에 아 이 집 되겠다 안 되겠다가 바로 판단이 되는 거야. 빅데이터가 쌓인 거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장사가 잘 될지도 그냥 본능적으로 생각이 났어.

어디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던 건 아닌데, 덕후다보니까 그냥 저절로 가지게 된 초능력이었어. 예전에 내 의남매 오라버니를 만나게 해줬던 그 자리에,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하나 있었는데.

이분이 음식점이랑 바도 직접 운영하셨거든. 나중에는 친해져서, 무슨 바 연다고 했을 때
자유롭게 컨셉 얘길 하다가이런 스타일로 한 번 해보시면 어떻겠냐고. 그 자리에서 슥슥 스케치를 해서 드렸는데. 그 분이 그 컨셉이 넘 신선하고 재밌는 거 같다면서 어차피 본인 가게니까 나더러 맘대로 해보래.

돈은 많이 못받았지만 그냥 재밌잖아. 그래서 진짜로 내 맘대로 다 해버렸어. 설계 하시는 분들도 내가 그려달란 대로 그려주셨고, 시공도 그렇게 했고. 음악도 메뉴도.

사실 그림쟁이들은 대부분 컨셉 잡는 거 좋아하잖아. 뭐 맨날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게 우리는 개념 정립, 글로 논지 정리, 비주얼라이즈(시각화)였거든. 그래서 전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어. 그림 그리는 것 처럼 재밌었지.

그렇게 만들어진 매장이 대박이 났어. 처음엔 홍대에, 압구정에, 정자동에 계속 생기면서 잘 됐대. 이게 또, 미술이랑 되게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성취감이 있더라?

사실 미술 전시는, 대부분 지인들이나 한정된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만 내 작품을 보러 와. 그런데 이런 매장들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내 창작물 안에서 내 의도대로 행동하고, 즐기게 되고, 매출이라는 숫자로 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신박하더라. 미술은 내가 열심히 하는 건 둘째고, 좋은 갤러리 눈에 들어야 하고 또 큐레이터들 개인 취향이나 친분에 의해서 나의 성패가 갈리잖아. 너무나 정보가 비대칭적인 시장인 거지.

그래서 그 인테리어 사장님은, 이후로 자기가 자기 매장 낼 땐 꼭 나한테 알바로 컨셉 잡는 걸 부탁하셨었어. 난 그냥 재미있는 알바려니 생각했었고 말야.

그런데 처음으로 돌아와서, 또다른 알바가 된 그 매장 말야. 한 눈에 봐도 제품이 별로 잘 안 팔릴 것 같은 매장인 거야. 매장 조명, 컬러, 음악, 메시지, 디스플레이.. 뭐 하나 맘에 드는게 없었다?

혈기 넘치는 시절이라, 그 대표님한테 가서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어. 죄송하지만.. 여기 두 평 전시 잘 한다고 해서 장사가 잘 될 매장이 아닌 것 같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나 같았으면 절대 그렇게 말 못 했을 것 같은데. 그 땐 좀 돌아이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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