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렇게 글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른 채 방황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위로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조금은 돌아보고 작은 분노도 내비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글을 쓰게 하고 싶었다.
‘그래,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이도 저도 아니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은 또 하나의 ‘인간실격’이다.
‘참으로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게 된 사람의 갈 곳 없는 탄식이 100일을 채웠다.
어떤 때는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 나와 함께해주는 이들의 이야기도 썼지만 대부분의 글은 부끄럽게 애매한 인생을 산 나에 대한 탄식이오, 반성이었다.
누가 이런 글을 좋아해 주긴 할까. 그 이전에 재미는 있을까. 잘 읽힐까.
쓰면 쓸수록 또 다른 후회와 탄식이 쌓인다. 내 글에 대한 의심이 쌓인다.
그냥 내키는 대로 써제낀 눈물과 한숨이 젖은 낙서를 모두가 보는 곳에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또 하나의 부끄러운 어정쩡한 글이 나왔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어정쩡한 글이 나와서 참 다행이다 싶다. 비로소 글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다. 어정쩡하게 참 잘 썼다 싶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던 이게 내가 쓰게 된 참 어정쩡한 글이다.
어정쩡한 인생이다. 오늘도 또 다른 어정쩡한 인생을 완성했다. 그래, 나는 어정쩡함을 완성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재밌는 말 아닌가, 나는 내 어정쩡한 인생을 완성하고 있다.
한 가지, 아니 몇 가지 부족한 사람인데 그게 참 글을 쓰면서 재미있어졌다. 아무래도 나는 모순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매번 불만족하고, 매번 후회하고, 또 매번 다시 꿈을 꾼다. 어딘가 하나씩은 모자라겠지만 그럼에도 늘 어제를 후회하며 내일을 꿈꾼다.
그게 내 어정쩡함을 완성시키고, 동시에 매일 새로운 날을 만든다.
매일 정체되어 있다고 나 자신을 닦달하다 보니 어느새 늘 새 풍경을 보고 새 감정을 느끼는 매일을 살게 되었다.
먼지 쌓인 채 지하철에서 흔들리며 굳어가는 평범한 사람 A가 아닌 모나고 이 빠졌지만 그래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방황하는 톱니바퀴가 되었다.
기계 속 톱니바퀴는 옛 저녁에 아니었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이제는 내 삶이 재미있다. 양말 한 짝 잘못 신은 것 같은 삶, 92점짜리 시험지 같은 삶. 애매하게 빗물에 젖은 양말 같은 삶.
그런 다급하지만 어딘가 사소한 내 결여가 애매함을 만들고, 날 정체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은 과연 난 무엇으로 또 나를 닦달하며 멈춰있지 못하게 할까.
‘오늘을 또 이렇게 어정쩡하게 보내버릴 거야?’라고 물으면서 몸이 달아있을까. 그리고 어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할까.
그 매일매일이 기대된다.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냉소적이고, 조금은 지치겠지만 그래도 질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난 내 이 어정쩡함을 조금 좋아하기로 생각했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붙잡고 읽어줬다면 당신의 마음 어딘가에는 도태되는듯한 절박함과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으리라 한편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의 애매함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지, 참 듣고 싶다.
내 삶의 만족을 당신에게 강요할 생각은 아니다. 늘 후회하는 삶. 이런 삶이 도저히 못 버티게 싫을 수도 있다. 당신의 어정쩡함의 해답을 듣고 싶다.
당신은 어떤 애매함을 가지고 있나, 어떤 불안함을 가지고 있나, 어떤 외로움을 가지고 있나. 어떤 후회를 가지고 있나.
그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데 어떻게 괴로워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같이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우고 싶다. 이왕이면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면서 말이다.
‘야, 그래도 나 만큼이나 답 없이 어정쩡한 사람이 한 명 더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로서 위로를 얻고 내 삶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어정쩡한 인생의 방향을 정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어정쩡해진 당신의 삶을 언제나 궁금해하고, 알고 싶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언제고 여유롭게 글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어정쩡한 인생이다. 덕분에 시곗바늘 소리에서 음악을 듣는다. 오늘은 조금 발가스레한 가로등을 바라볼 수 있다.
오늘 밤도 참 새롭구나. 어정쩡한 만큼 새롭구나.
그리고 참 아름답구나.
나도, 당신도.
우리의 어정쩡한 웃음과 그림자도.
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