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페이스북에 "8년 전 오늘" 알림이 떴다. (당시에는 남자친구의 아버지셨던) 시아버지께서 내 페이스북 담벼락에 공유하신 기사와 우리가 나눈 대화였다. 나이를 거스르는 다부진 체격과 큰 키, 서글서글한 인상이 멋있으셨던 시아버지는 그 기사를 공유한 지 일 년 후 돌아가셨다.
남편에게는 아버지이기 전에 마음을 나누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가장 신뢰하는 인생과 신앙의 멘토였던 시아버지. 굉장한 다독가이자 본인도 글 쓰는 걸 즐기셨던 시아버지 영향 덕에 남편은 시를 쓰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아버지의 글을 제일 먼저 읽고 평가하는 크리틱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입체적인 한 사람으로서의 내 부모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그런 부자 관계가 부러웠고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학부 졸업을 앞둔 시기 암 진단을 받으신 시아버지는 남편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야속할 정도로 빨리 가시는 바람에 남편 마음의 어딘가 작은 조각이 부서져 내렸고, 아마 그 조각은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시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늘 내가 먼저 눈물바람이 되는데, 마음 한 조각이 영영 떨어져 나가 울지도 못하는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것뿐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날 밤엔 조금 덤덤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그 알림을 보여주고 나란히 누워 물었다.
- 언제 아버지가 제일 보고 싶어?
- 그냥. 특별한 때가 있나. 요즘 정치 뉴스를 보면 우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오늘 교회 설교에 대해선 뭐라고 생각하셨을까. 이 상황이라면 어떤 조언을 해주셨을까. 이 식당에 갔으면 이걸 좋아하셨겠다. 그냥, 그렇게 늘 마음속에 있지.
또 눈물샘이 터지려는데, 남편이 그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냥 덜 아끼고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자는 생각을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욜로(YOLO) 마인드가 뭔지 알 것 같더라고. "아니 그렇다고 미니어처 사모으는 거랑 아버지랑은..."이라고 하려는 찰나 남편이 그래서 결혼도 빨리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상황과 조건이 더 나아지길 기다리면서 함께 보내지 못했을 시간이 얼마나 억울하냐고. 더 기다리지 않아서 기쁘고 기다리지 않은 걸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다고. 내가 싱가포르로 이주해서 함께 지낸 지난 몇 년이 진심으로 소중하고 행복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남편은 원래 행복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 우리 싸운 시간도 다 포함해서?
- 당연하지.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어.
온전히 내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로 이주 후 몇 년 동안 나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종종 갈 길을 잃어버린 듯한 내 커리어에 대한 원망을 남편에게 자주 쏟아냈다. 의도적으로 마음에 상처 주는 모진 소리를 하던 순간들까지 소중하다는 소리를 말간 얼굴로 하는 남편을 보니 어쩐지 자격 없이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부끄럽고 행복해서 울고 싶어 진다. 남편은 자격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신을 믿는 사람이니까, 예사로운 일인 듯 조금 무심히 "그렇지만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 "사랑은 원래 그런 거야."
우리는 고작 인간이라, 자격을 묻지 않고 온전한 사랑을 주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남편 덕에 이렇게 가끔 울고 싶어 진다. 같은 마음으로 오래오래 그의 곁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