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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찬 Aug 06. 2021

교사의 매너리즘

[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교사의 매너리즘

 고작 6년차인 내가 이 단어를 언급하는 것이 건방진 것도 같지만, 어느새 나도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고3 담임 및 교과담당을 4년 연속하면서 수능특강을 풀이하는 것이 물리기 시작했고, 입시결과도 너무 잘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능특강, 수능완성을 풀어보고 가르치는 것과 입시지도를 하는 것이 '공부'의 과정이었지만, 지금의 그냥 해오던 '일'이 되었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숙련되었다는 걸 수도 있다. 이런 걸 매너리즘이라고 하는 걸까? 교사의 매너리즘은 과연 뭘까? 특히, '나'에게 매너리즘은 무엇으로 정의될까?

 매너리즘에 대한 '인식', 즉, 나 스스로를 경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부터 생각해본다. 그건 교사가 되기 전의 마음가짐과 경험들, 어떤 일을 처음할 때의 태도 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가진 예비교사 시절의 다양한 경험은 이러한 관점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교사가 되어서도 여러 선생님들과 교육 사례들을 보면서, 매너리즘에 대한 경계심이 일어나지만, 결국 타인과의 비교보다 '나' 자신과의 비교, 특히 과거의 '나' 자신과의 비교에서 경계심이 본질적으로 일어난다.

 사범대 저학년 시절, 다양한 경험의 목적은 '다양한 학생을 포용하는 다양한 경험이 있는 교사'였다. 실제로 현장에 와보니, 내가 세상을 경험한 만큼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부분과 심어줄 수 있는 씨앗의 종류가 여럿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는가? 세상은 변하고 아이들이 겪을 미래는 물론 내가 겪을 미래도 다르다. 과거의 내 경험으로 포용성과 다양성을 갖기는 부족할 것이다. 그 한계가 슬슬 느껴질 때 쯤, 매너리즘을 강하기 인지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범대 고학년 시절, 여러 경험들의 목적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교육자'였다. 아직 이건 그 결과물이 충분히 드러나진 않은 것 같다. 시간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꿀 힘을 제공하고 있는가? 나도 교육 현실에 젖어 '세상을 바꿀 아이들'이 아닌 '세상에 적응하는 아이들'을 만들고 있진 않는가?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아이들의 잠재력과 개성을 키워주지 못한 결과물을 맞이한다면, 그 또한 매너리즘을 강하게 느끼는 시점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저거는 이 부분에 도움될거니까 해봐야지' 마음 먹었으면 했다. 예비교사 시절 교육봉사가 부족한 교육 현장 경험을 쌓는데 도움될거라 막연하게 생각했고, 어쨌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지오지브라가 수학교육에 도움된다니 이것저것 두들겨보았다. 융합교육(특히, STEAM, 그 시절 교육계 핵심 키워드였다)이 대두될 것이라 하니 연수도 듣고, 각종 교육 사례들을 접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거는 이 부분에 도움될거니까 해봐야지'라고 생각은 자주 하지만, 실제 행동을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아차 싶은 것이 있었다. 우연히 TV에서 EBS를 틀어보니 '소프트웨어야 놀자'라는 제목으로 초등학생들이 나와 코딩적 사고를 하는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저 아이들이 5년 뒤면 고등학교로 올텐데. 난 생각만 할 뿐 준비가 하나도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교육에 AI교육에 들어온다는데, 코딩 교육이 중요하다는데,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등등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 변할걸까? 

 근데 또 이걸 매너리즘으로 치부하고 싶진 않다. 내가 저런걸 공부하는 것이 기본값이어야 된다는 것은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나는 자유의지로 움직이고 싶다. 조금 살아보니 '해야 되서 하는 것'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같은 행동, 일이라도' 나의 태도와 흥미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의 자유의지는 매너리즘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을까? 하고 싶은 게 없으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으로 말할 수 있을까?

 늘 그렇듯, 여러 경험은 이유는 대부분 나중에 발현되고, 그것은 다른 삶의 경험을 만나 또 다른 경험으로 성장해나간다. 예비교사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미래의 나를 고민하게 하고 있다.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수업 잘하고, 업무 잘하는 교사이고 싶다. 나는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고민만 많은 교사인 것 같다. 재밌는 경험은 고민하는 나를 만들었다. 또 나는, 앞으로 어떤 질문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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