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위대한 개츠비』가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라면, 작가 피츠제럴드의 실제 삶은 '질투'와 '인정투쟁'으로 얼룩진 전쟁터였습니다. 화려한 재즈 시대의 왕으로 군림했던 그에게는 평생을 괴롭힌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재능을 훔쳐야만 했던 아내 젤다였고, 다른 하나는 그를 경멸하면서도 사랑했던 친구 헤밍웨이였습니다.
우리는 젤다 피츠제럴드를 흔히 스콧의 사치스러운 아내이자, 그를 파멸로 이끈 '악녀' 혹은 '광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자료들은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스콧의 단순한 뮤즈가 아니라, 재능을 착취당한 피해자였습니다.
피츠제럴드의 데뷔작 『낙원의 이쪽』이 성공했을 때, 젤다는 남편의 소설에서 익숙한 문장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문구들이었습니다. 스콧은 젤다의 일기를 몰래 가져다 소설 속 여주인공의 대사로 썼고, 심지어 『위대한 개츠비』의 그 유명한 대사 "예쁘고 귀여운 바보(beautiful little fool)" 역시 젤다가 딸을 낳았을 때 실제로 했던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습니다,.
젤다 역시 뛰어난 작가적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자전적 소설 『왈츠는 나와 함께』를 쓰자, 스콧은 자신이 집필 중인 『밤은 부드러워』와 소재가 겹친다는 이유로 분노하며 원고의 많은 부분을 삭제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또한 젤다가 쓴 수필에서 '나(I)'라는 주어가 반복되자 "그놈의 'I' 좀 집어치울 수 없어? 당신이 뭔데?"라고 소리치며 주어를 전부 '우리(We)'로 바꿔버렸습니다. 결국 그녀의 글들은 스콧의 이름이나 공저로 발표되어야만 했습니다.
젤다는 남편의 책에 대해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라는 뼈있는 서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플래퍼(신여성)'였지만, 남편의 명성 뒤에 갇혀 자신의 목소리를 거세당한 비운의 예술가였습니다.
1925년 파리의 '딩고 아메리칸 바'. 말끔한 양복을 입은 피츠제럴드는 갓 등단한 5살 연하의 무명작가에게 푹 빠졌습니다. 그의 이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습니다. 두 대문호의 만남은 우정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지독한 애증과 열등감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결정적인 요인은 '술'이었습니다. 피츠제럴드에게 술은 영감을 주는 뮤즈였지만, 주사가 심해 파티를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반면 '마초'의 대명사 헤밍웨이에게 술은 삶의 활력소였으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강인함을 자랑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피츠제럴드를 나약하다며 경멸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 난 결정적인 사건은 '복싱 경기'였습니다. 1929년, 헤밍웨이가 다른 작가와 복싱 경기를 할 때 피츠제럴드가 1분씩 시간을 재는 심판(타임키퍼)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피츠제럴드가 실수로 라운드 종료 시간을 넘겨버리는 바람에, 헤밍웨이는 추가 시간에 결정타를 맞고 KO패를 당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가 고의로 그랬다며 길길이 날뛰었고, 이후 그를 "거세된 남자"라고 비난하며 끊임없이 조롱했습니다.
최근 발견된 헤밍웨이의 미발표 단편소설에는 피츠제럴드를 모델로 한 신인 복서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피츠제럴드는 코가 부러지고 멍투성이가 되는 굴욕적인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헤밍웨이는 문학적 재능뿐만 아니라 신체적 남성성에서도 자신이 피츠제럴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화려한 재즈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공황이 찾아오자, 피츠제럴드의 삶도 무너져내렸습니다(Crack-Up). 아내 젤다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는 알코올 중독과 빚더미에 시달리며 헐리우드에서 삼류 시나리오를 쓰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 『붕괴(The Crack-Up)』에서 "모든 삶은 붕괴의 과정"이라고 고백하며, 외부의 타격보다 내면에서 오는 파괴가 더 치명적임을 토로했습니다. 결국 그는 1940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그토록 조롱했던 헤밍웨이 역시 훗날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데이지'라는 환상을 좇다 파멸했다면, 작가 피츠제럴드는 '성공'과 '인정'이라는 환상을 좇다 스스로를 태워버렸습니다.
그는 젤다의 재능을 가져다 자신의 성공을 위한 연료로 썼고, 헤밍웨이의 강인함을 동경하면서도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들의 관계는, 위대한 예술작품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과 나약함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피츠제럴드가 개츠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위대함'이란, 이런 지질하고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끝내 무언가를 갈망하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 더 읽어볼 거리
영화: <지니어스 (Genius)> (편집자 맥스 퍼킨스와 작가들의 이야기)
책: 젤다 피츠제럴드, 『젤다』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단편집)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피츠제럴드 부부와 헤밍웨이의 관계가 흥미롭게 묘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