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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Apr 03. 2023

혼자가 좋아도, 가끔 선택받기도 하고

회사에 멘토링 제도가 생겼다. 멘티와 멘토를 한 팀으로 엮어서 친목을 쌓게하여 멘티의 회사적응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제도가 생긴 다음날 나에게 전화가 왔다. 나를 멘토로 지정하고 싶어하는 직원이 한 명 있다고 전했다. 처음엔 이제 3년차 직원인 나에게 멘티 해볼 생각있냐는 전화인 줄 알았다. 멘티요? 라고 되묻는 나에게 담당자는 차분하게 다시 나에게 멘토라고 알려주며, 나를 1순위로 정한 신입직원이 있어서 멘토로 활동할 의사를 묻는 것이라 알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좋은 사람인 것 같고, 친해지고 싶어서.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직원이어서 의아했지만, 고민없이 멘토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필요하다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돕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였다. 전화를 끊고나서도 계속 이유를 곱씹었다. 뭘 보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을까. 빛보다 빠른 소문이 사내에서 돌기라도 하는걸까, 첫인상을 보고 고른걸까, 여러 생각을 해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직접 대놓고 물어봤지만, 뻔한 이유를 말하며 뭔가 자세한 내용은 꿀꺽 삼키는듯 싶었다. 평소에 대화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골랐다는, 뻔한 이유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남에게 관심 없고, 동료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는 나와 왜 친해지고 싶었을까.. 혼자 있는 게 편해서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는, 일에만 푹 빠져사는 내가 왜 좋은 사람처럼 보였을까.


현 회사에서 처음부터 고독을 즐겼던 건 아니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동기들과 친해지려고 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았다. 일도 잘 하면서,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지고 싶었다. 물론 바람 대로 잘 되진 않았다. 시기질투가 팽배하고, 상하관계가 경직된 문화 속에서 업무적으로 평판이 좋았던 나를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어려워했고, 그래서 나도 다가가기 힘들었다. 다가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근본적으로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을 가진 나는 역시 어딜가나 혼자 생활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다가온 직원이 참 신기하기도 했고, 매번 친해지려고 다가갔다가 까였던 경험이 생각나서 적극적으로 받아줬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직원이 그 기분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처럼 타인에게 실망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덜 생겼으면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느끼는 건, 사실 별다른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싫어하고, 철저하게 배척당하는 사람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나타나는 순간이 가끔 생긴다고 하는 건 아닐까.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인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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