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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y 06. 2023

주식 그래프 같은 감정 기복

가족들이 최근 말해준 게 있다. 요즘 내가 그날 기분에 따라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운이 다르다는 걸 듣고는 조금 놀랐다. 별일 없었던 날은 차분하게 문을 열고 걸어서 들어오는데,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날에는 좀 더 과격하게 집에 들어온다고 얘기해 줬다. 그 말을 듣고, 요즘 내가 되게 감정적이고 예민한 사람이 되었구나 싶었다. 이전에 비해 스트레스도 쉽게 받고, 불안한 감정도 불쑥불쑥 찾아와 제어가 안 될 정도가 되었다는 걸 요 근래에 깨달았는데, 그게 몸으로도 나도 모르게 표현이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 이전에 비해 다른 사람한테 더 많이 휘둘리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일을 할 때도 나의 성취감, 만족감 등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업무 일정, 상사의 기분 등 타인과 회사를 생각하기 급급하다. 일과 관련해서 별다른 이유 없이 불쑥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도 동료들의 나에 대한 평가를 내가 이전보다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그런 것 같다. 실수하면 안 되고, 허술하게 일처리를 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원래부터 있긴 했었지만, 더 심해진 느낌이 든다.


원래 난 늘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항상 타인의 인정을 바라왔으니까, 원래 인정욕구 충족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렸을 때 생긴 결핍이 있는 게 아닐까 예전부터 느껴왔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금씩 조절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좀 무너져서 수습을 못하는 기분이 든다. 작년에 비해 업무량이 더 줄었고, 동료들과도 더 무난하게 지내는 데도 말이다. 


사실 왜 전보다 더 마음이 불안정해졌는지 직감적으로 느끼기는 한다. 회사일은 조금씩 적응해 가도, 주변 인간관계가 좀 더 불안정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요즘 특히, 사람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앞과 뒤가 다르고, 태도와 행동이 다르고,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직접 겪으면서 조금씩 마음속 기둥이 흔들리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람들을 더 불편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회사 동기든 선배든 누구든 이전보다 더 거리를 두는 느낌이 든다.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에 혼란스러움이 더 강해졌다. 상황을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참 다양한 인간군상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만한 일들이 있었다. 내 앞에서는 A가 좋다고 했다가, 뒤에서 딴 사람에게는 B가 좋은데 가질 수 없다고 불만을 표현하고, 그걸 듣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다시 선택할 수 있게끔 다시 물어봤는데도 내 앞에서는 A가 좋다고 하는 사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되게 혼란스러웠던 경험이었다. 또, 태도는 나에게 호감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행동은 나에게 적극적이지도 않고,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내가 호감을 표현하며 친해지려고 했다가 거절당해서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실제 행동은 또 관심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동시에 닥치다 보니, 그냥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걸 포기해 버렸다. 모든 판단이 다 틀릴 것 같아서.


이전에는 내가 눈치가 빠르고, 심리를 잘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믿음이 깨져버렸다. 요즘은 상대방 표정을 해석하고, 미세한 행동으로 태도를 읽는 등의 사교기술을 쓰지 않고 있다. 괜히 오해만 할까 봐, 쓸데없이 얼굴 붉힐 일만 만들까 봐 그렇다.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뒤죽박죽으로 움직이는 사람 심리를 이제는 이해하질 못하겠다. 그래서 사람 마음에는 당연한 게 없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는 게 피곤하다.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니, 감정 기복도 심해진 것 같다. 이러다가는 내 정신건강도 뒤죽박죽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기로 했다. 내 사리판단과 욕구가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정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친해지기로 하고, 중간에 관계 구축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잘 안돼서 짜증 나면 관둬버리는 것. 원래부터 내가 과감하게 따르고 싶었던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말과 행동만 믿는데, 50%만 믿기로 했다. 표정이니 태도니 하는 불분명한 표현 방법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쉽게 믿음을 가지고 싶지도 않아 졌다.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쉽사리 사람을 믿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매번 타인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다 보면 결국 내 인생을 잃어버린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며 내 인생, 내 감정을 지키지 못하면, 주체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그렇게 남은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워런버핏 같은 투자 좀 한다는 사람들이 매체에 나와서 투자에 대해 종종 말하는 조언이 있다. 안정적인 주식투자를 하려면 단기적 차액거래가 아닌 자기 주관에 따른 장기적 가치투자를 하라고 하던데, 인생 사는 것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시 중심을 잡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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