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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Aug 30. 2023

라디오를 듣다가 울어버렸다

출퇴근 길에는 늘 라디오를 듣는다. 가끔 스타일 맞는 노래를 찾을 수 있어서 좋고, 유용한 정보들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노래는 대부분 시청자의 신청곡을 틀어준다. 신청곡을 소개할 때는 그 노래를 신청한 이유나 관련된 사연을 함께 소개해주곤 한다. 그래서 사연 때문에 노래가 좀 더 가슴에 와닿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끔씩 주말에 근무한다. 며칠 전 토요일도 그랬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사연이 흘러나왔다. 그날이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평소처럼 자식들은 학교에 등교하고, 본인은 직장에 출근했지만, 남편만 이 세상에 없어서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들으며 운전하는 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펑펑 울어버렸다.


먼저 떠나간 사람이 그립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다음 생에서 만나는 걸 초연하게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가사를 들으니, 최근 내 주변에서 생긴 비슷한 일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버린 것 같았다.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참 의외인 일이었다. 


젊지만 지병이 있었던 배우자를 떠나보낸 일이 최근 회사 내 어느 직원에게 생겼다. 사망할 정도로 위험한 지병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며칠 만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 직원 본인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배우자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세상이 무너지는 사건처럼 본인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해도, 어떤 기분일지 잘 와닿지 않는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고통일까 싶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직원의 어린 자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린 그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걱정이 되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 아이의 삶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워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직원들 모두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마음 아픈 일이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듣다 보니 그 일이 생각이 나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상갓집 방문을 앞두고 있었던 때여서 좀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원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적을 두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할 일만 묵묵히 할 뿐,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든 말든, 누가 결혼을 하든 이사를 가든 뭘 하든, 기본적인 경조사만 챙길 뿐, 진심으로 직원들과 교류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고, 많이 교류해 봤자 뒤에서 말만 많이 돌고 상처만 많이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혼자 사는 게 나와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혼자 지내는 걸 즐기는 내가 남의 일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나도 참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사람인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혼자가 좋다고 하지만, 은근 혼자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닌가 싶다.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만, 은근히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걸 보면, 아직 심장이 완전히 굳지는 않은 것 같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철저하게 혼자 살기에는 세상에 슬픈 일이 참 많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경우들도 군데군데 생기는 것 같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혼자 또 여럿이'라는 말도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혼자 살더라도 때로는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살아야 한다.


눈물을 훔친, 가라앉은 마음으로 그날 저녁에 조문을 갔다 왔는데,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지 모르는 것 같은 평온한 표정으로 찬송가를 부르던 아이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서 오랫동안 있지는 못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계속 있기 힘들었다. 자신의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때가 되면 그 아이에게 찾아올 것이다. 가슴속의 텅 빈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훗날에는 비록 내 곁에 한 사람은 사라졌지만, 조금 더 높은 곳에 있을 뿐이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아이는 믿게 될 것이다. 그 믿음이 인생을 더 찬란하게, 의미 있게 만들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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