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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 Jul 16. 2016

큐브를 섞다

학교에서 유행하는 놀이의 시작은 도무지 알 수 없다. 전국적으로든 지역적으로든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년에서 큐브가 유행했다. 그 유행에 더불어서 나는 집에 있던 오래된 큐브를 써 보고는 큐브 맞추는 방법을 익혔고, 새 큐브를 샀다. 별 것도 아닌 도구 하나로 서로가 같이 놀았고, 그럴 때 마다 반과 학년 전체가 동호회라도 된 듯 했다. 낮에 큐브를 보고 이 유행이 생각났다. 서랍에 있던 큐브를 꺼내 섞었다. 


그때의 관계는 정말 가볍고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그렇게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다. 우연으로 구성원이 잘 맞아떨어졌고, 남들이 같이 어울리니 자연스레 같이 어울린 것이다. 그때 나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았다. 잘 어울리는 척 하면서도 없는 곳에서 험담을 하고, 외모나 태도 등을 평가하는 모습을. 당연해도 당연하다고 할 수 없는. 내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관계는 옅어졌다. 그 모습 속에서 아련한 아쉬움을 느꼈지만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찾지 못했다. 찾았다 하더라도 관계의 차등함에 따라 계속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말 좋아서 어울리던 사람은 사실 없었다. 불완전했을망정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그 불완전함은 분명한 결함이었다. 


오래간만에 맞추기 시작한 큐브는 중간부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인터넷을 찾아보며 완성했다. 완성한 큐브를 서랍에 넣었다. 즐길 일이 없는 큐브에는 군데군데 손때가 묻어 있었다. 


원문 : 02시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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