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의 태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롤라 Aug 19. 2023

"오늘은 내 편이 아니었던 거야"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

"스포츠에서 입스(yips)라는 용어가 있어. 잘 던지던 스트라이크를 어느 순간부터 못 던지는 거야. 심리적인 부담감으로. 힘들었던 시기 겪은 거 알아.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려있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슬럼프에 빠질 수 있어. 마음 단단히 먹고 일어나자. "


팀장님은 잘해왔던 일에서 놓치는 부분이 생기자, 따로 불러 격려의 이야기를 하셨다.


작년 봄, 아니 작년 1월부터 봄이 끝나가는 무렵까지 시속 200KM를 달렸다. 일을. 쉬지 않고 달렸다.

처음 하는 일이었고, 중요도가 높은 일이었고, 중간중간 데드라인이 명확한 일이었으며,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부담감과 중압감과 함께 그 시간 동안 나의 삶에는 거의 '일'밖에 없었다. 일밖의 일상도, 가족도, '나'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봄을 달렸고,

그 해 여름 늪에 빠졌다.


무기력? 번아웃? 슬럼프?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던 나는 없고, 그 무엇도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빛에 반짝이는 나무의 초록빛만 보아도 감탄했었는데,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 가슴에 구멍이 뻥 하고 크게 뚫린것같아.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무거운 게 얹힌 듯 안 내려간다.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사는 것일까? 행복하지 않다.' 이런 질문을 던지며 그 설명할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빠져나오고 싶었다.


표현의 감각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말의 '표현'에 대해 소설의 형태로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주인공 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잃는다. 절망적인 마음인데 설상가상 부주의하여 옷에 커피가 쏟아진다.

세연은 허벅지를 툭툭 털어내면서 여진처럼 남은 생각도 툭툭 털어냈다. 오늘이 내 편이 아닌 거라고. 좀 더 크게 잡으면 서른두 살은 내 편이 아닌 거라고 여기기로 했다.      - 표현의 감각 -


다니던 직장을 잃고,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그날 그는 그 냥 그해가 그의 편이 아닌 거라고, 우울에 빠지는 대신 자신에게 생긴 일을 수용하고 털어낸다.


오늘이, 서른두 살이 그의 편이 아니었던 거야 라며 툭툭 털어버리려는 그 단단한 마음과 태도가 매력적이었다. 탐났다. 갖고 싶어졌다.


힘들다고, 앞으로 영원히 힘든 건 아니다.

'그래, 올해의 봄은 내편이 아니었던 거야. 그렇게 여기기로 하자.'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백이진과 나희도는 말한다.

"할 수 있는 말이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봅시다. 최선을 다해 봅시다. 다만 바랍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길. "

 맞아 백이진. 그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야. 그러니 우리 힘들 때는 마음껏 좌절하자. 실컷 슬퍼하자. 그리고 함께 일어나자.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 일어나자.  내가 너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이 될게. 꼭 그렇게 만들게.


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며 슬럼프, 번아웃, 무기력, 실패를 그 어떤 형태로든 마주할 수 있다.

넘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벌떡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힘들 때는 마음껏 좌절하고, 슬퍼하자.


하지만 '그날이, 그 계절이, 그 해가 내 편이 아니었던 거야.'라고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우리의 편이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