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에서 겪는 코로나 사태
브런치에도 코로나 관련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고, 온 세상은 다 코로나 얘기만 하고 있어서, 저 조차도 이렇게 코로나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싫지만), 그래도 이 곳의 상황은 한국과 많이 다르기에 적어봅니다.
나는 인도네시아 근처에 위치한 동티모르에 살고 있다. 이 곳은 강원도만 한 면적을 가진 나라로, 인구는 약 120만 명이다. 동티모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최빈국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런 곳이다.
가족들은 우한 폐렴인 코로나 19가 성행하기 시작한 1월 말부터 걱정 가득한 전화를 수시로 해왔다. 가족들은 많이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일단 동티모르는 외국인의 입출국이 잦은 나라가 아니다. 또한 외국과의 교류가 적고(유학생, 여행가, 사업가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직항 편은 인도네시아 발리, 싱가포르, 호주 다윈 3곳밖에 없다. 심지어 빠르게 중국인 입국 금지를 시행했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가 동티모르까지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현재 3월 초, 동티모르에 입국한 이탈리아인이 의심 증세를 보인다는 뉴스와 함께 코로나의 위협이 확산됐다. 동티모르 현지 병원의 의료 수준이 굉장히 낮고, 방역 시스템이 잘 되어있지 않은 점을 감안했을 때,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분명히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위생 수준도 낮으며 공공시설이나 대중교통에서는 옆 사람과 팔다리를 모두 꼭 붙어 앉아 가야 할 만큼 시설이 열악하기에, 코로나가 퍼진다면 정말 삽시간에 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동티모르는 검사 키트조차 없어서, 검체를 호주로 보내야만 양성인지 음성인지 결과를 알 수가 있는 상황이다. 방역은 둘째치고 검사 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듣고 ‘내가 정말 동티모르에 살고 있긴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선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 검사 결과가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것,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모두 방역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기서는 그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 후진국에 있다는 건 단순히 불편하고 힘든 것을 넘어서, 음... 전염병 같이 통제가 어려운 건 모두 하늘에 맡기는 느낌이랄까?
다행히 이탈리아인은 음성으로 판정 났지만, 동티모르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현지인들의 외국인 혐오감도 높아지는 듯했다. 밖에 나가면 '꼬로나 꼬로나!'하고 나에게 소리치는 사람을 (무조건) 마주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의심환자가 또 나왔고, 동티모르 정부는 외국인 혐오로 인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의심환자의 국적 및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바로 옆 나라인 인도네시아의 확진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도 벌써 5명이나 나왔다. 그중 한 명은 발리로 간 53세 영국인으로, 발리 소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기저질환이 있었다고 뉴스는 보도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확진자의 동선 및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공개를 안 하는 건지, 조사가 안 되는 건지).
생각보다 후진국에서의 코로나 사태는 힘든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의료시설이 너무나 열악하다. 위생 수준도 너무 낮다. 그리고 그 전염병을 감당하기엔 나라의 자본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내가 이 곳에서 코로나에 걸린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본다. 확진자를 수용할만한 음압병실이 있을까? 치료를 할 수 있는 그만한 의료기기가 있을까...? 의심 증세가 생긴 이후에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꼼짝없이 동티모르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또한 현재 싱가포르, 호주는 한국인의 입국이 어렵고, 인도네시아의 경우 영문 건강진단서를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발리 직항편도 7회에서 4회로 줄었다. 후에 인도네시아가 한국인 입국 금지를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러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 전까지 동티모르에서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한국의 상황도 어렵지만) 한국으로 귀국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한국이 확진자는 훨씬 많고 코로나가 퍼져있어도, 한국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아파도 한국에서 아픈 게 낫고, 치료를 받아도 한국에서 받는 게 100배는 나을 것이라는...) 또 이 곳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느낌도 들어서겠지.
어제 식당에서 뒷 테이블 사람들은 '꼬로나 비루스 씨나!(코로나 바이러스 중국인)'이라는 말을 계속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괜히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그와 동시에 미국 NGO 단체 전원이 동티모르에서 일시 철수한다는 소식을 동료에게 들었다. 집에 가려고 하는데 카페 앞에서 만난 포르투갈인은 ‘You! No corona virus?’라고 물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다 퍼진 상황인데, 내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볼 건 또 뭐랍니까.
그리고 또! 주위 사람들이 자꾸 ‘얀, 너 한국 못 돌아가지?’라고 비아냥대듯이 묻는다. 음... 한국이 제 나라인데... 들어갈 수 있죠.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져도 제 나라 국민은 받아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한 마디 덧붙인다. ‘여기 이제 외국인들 못 들어와! 우리 정부가 막았거든! 네 친구들도 이제 우리나라 못 들어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