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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May 07. 2020

제가 서양미술은 잘 모르는데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시작하다


줄리언 반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나는 서양 미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사실 서양 미술뿐 아니라 미술 자체를.) 그런데도 유럽여행을 하면서 미술관에 참 많이 갔다. 아주 미술관 테마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물론, 뭔가를 알고 간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고풍스럽거나 현대적이라 감탄을 자아내는 그러한 공간에 있다는 게 좋았다.


여행에서 만난 미술관들은, 내가 머물 수 있는 공간 중에 가장 비쌀 것 같은, 사실 돈으로 환산 자체가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각자 다 다른 생각과 취향대로 움직이지만, 그 속에 유명한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의 서열이 나누어져 있는 그런 공간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단지 먹고사는 문제나 경쟁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혹은 그것을 대단시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미술관을 ‘그냥’ 다닐수록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자꾸 걸렸다. 나도 더 많이 보고 싶은데 아는 게 없으니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오디오 가이드가 없었다면 아마 그림 크기 비교만 하다 나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오디오 가이드 덕에 유명한 작품들을 찾을 수 있었고,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그림들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며 의미를 찾고자 하기도 했고, 예상과 다르게 구석에 걸린 이름 없는 그림들을 마음에 들어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점점 흥미가 있어지면서 자연스레 미술에 대해 알고 싶다는 동기가 스멀스멀 뇌 속에 자리를 텄다.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 한 지 약 2~3년이 지나고 나서야 공부에 대한 동기가 생긴 것이니, 꽤 긴 시간을 흘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곤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구매했다. 공부하는 데 가장 좋은 선생님은 바로 책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강의나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책으로 읽는 것이 더 천천히 글을 보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을 갖기에 낫다. 좋거나 인상 깊은 문장은 잠시 적어둬도 되고, 그것이 안 된다면 표시를 해뒀다가 또 볼 수 있으니까. 물론 동영상도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동영상은 말로써 문장을 전하기 때문에, 그 느낌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귀를 지나 훅 - 사라져 버린다. 나는 이상하게도, 듣는 것은 잘 곱씹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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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미술 입문서로는 좋지 않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인물에 대한 기본적 소개가 부재하기 때문인데, 적당한 배경지식을 갖고 읽어야 훨씬 잘 읽힐 것 같다. 입문서로 보기엔 깊으며 복잡하고, 전문 서적이라고 하기엔 약간 애매하다.


또한 수많은 그림들을 언급하지만 계중 한 두 개만 첨부가 되어있는 점도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나머지 그림은 작가의 묘사대로 상상을 하며 읽거나 인터넷에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데, 그림 제목 번역을 다르게 한 것인지, 아니면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라 그런 것인지, 찾으면 다 나온다는 구글에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 몇 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보고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긴 하다. 흔하고 평범한 미술 에세이가 아닌 점은 분명하기에.


그리고 비문학 치고 재미가 있다. 작가가 소설가여서 그런지, 이야기를 전개해내는 능력이 뛰어남을 느꼈다. 초반에는 비극적인 사건을 전개하는 데 너무 재미있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을 얼른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또한 묘하게 비꼬는 듯한 위트 있는 말투도 읽는데 쏠쏠한 재미를 준다.


"미술 작품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는 잘못이 없다. 관심도 없고 위협도 느끼지 않는데 그러는 사람은 없으니까. 성상 파괴자들이 대상에 관심도 없이 파괴하는 일은 매우 드물지 않은가."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일단 위안부 소녀상이 떠올랐다.(작가는 마네를 이야기했다.) 작년 일본의 한 예술제에 소녀상이 출품되었다가 사흘 만에 철거된 일이 있었고, 같은 해 독일 베를린의 한 전시도 소녀상이 출품되었는데, 당시 주독 일본 대사관은 이를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었다.  일본은 왜 소녀상을 공격하고 철거하고 싶어 하는가.


"이번에도 그들은 잘못이 없었다. 그들의 감상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정할 수 없는 두려움에 뿌리를 둔 경멸." 작가의 말이다.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등장과 함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 책의 작가는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자, 이게 당신들 있는 그대로요."라고 마네가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살롱전을 다니며 무릇 고상하고 위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사실 이것은 일종의 역설 (중략) 그림의 소재로 그들이 살아가던 파리의 생활"을 썼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인정할 수 없는 두려움에 뿌리를 둔 경멸"을 보였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고상하고자 했으나 실제는 그렇지 못했던 그들의 생활을 드러낸 것에.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또한 나폴레옹 3세의 꿈이 굴욕 당하는 순간을 그리고자 한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검열하여 전시를 금지시킨 당시 상황을 이렇게 비판한다.

"문제는 그림만 억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네가 이 그림을 보여주려 했던 당대의 사람들, 그들의 반응도 억압당했다는 사실이다. 반응에 대한 자료가 부재하기에, 오늘의 관람객들에게 이 그림은 더욱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보다시피, 검열은 언제나처럼 성공한 셈이다."


현대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는 언제나 논란이다. 어디까지가 피해 주지 않는 자유이며, 개인의 권리이냐는 것인데, 마네를 보는 작가의 관점, 즉, 역사적 관점이, 표현의 자유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에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것이 나왔다 들어가고, 지지하거나 비판(비난이 아닙니다)하며 토론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것들이 역사로 남아 '미래의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를 도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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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쭉쭉 읽다 보니 마그리트가 나온다! 아, 마그리트! 마그리트의 존재도 몰랐던 벨기에 여행 중, 무작정 '르네 마그리트 뮤지엄'을 갔었을 때가 떠올랐다. 마그리트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터라, 기대 하나도 안 하고 갔는데, 단숨에 마그리트 그림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지극히 현대적인 색감과 선, 어두컴컴한 뮤지엄 실내에서 더욱 빛났던 그림, 창의적인 그림에 찰떡같은 작명 센스까지.

르네 마그리트,  <통찰력>

"도발적인 제목이 그 화룡정점을 이룬다. 젊은 사람 치고 마그리트를 좋아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내가 나름 알고 좋아하는 화가에 대한 의견을 들으니 한 장 한 장 집중해서 읽게 됐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입문서로는 좋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다른 화가들에 대해서도 나의 견해가 있었거나 적당히(혹은 잘) 알고 있었다면, 책 내용을 단순 지식이 아니라 작가의 깊은 고민과 감상으로, 한 장 한 장 더 새롭고 재밌게 느껴졌을 것 같다.


"줄리언 반스의 사적인 미술 산책"을 읽는 며칠의 여정은 재미있으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다른 서양미술 책을 읽어본 후에 또다시 꺼내볼 것 같은 그런 미완성 마침표로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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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사실 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지성이 부러웠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정확히 간파하고 글로 써낸 그의 능력, 미술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고 화가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아, 어떻게 하면 저런 지식을 갖고 사유할 수 있는 걸까. 부럽다, 그의 똑똑함.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가끔 더 큰 기능을 한다. 미술은 바로 그 전율이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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