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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zza Feb 12. 2021

결정적 순간의 코칭

Coaching at the bottom

  재작년 겨울 제 감정의 바닥을 보았습니다. 업무, 출장, 학업, 육아 등에 치여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책임감 중독에 빠지기도 했어요. 여유가 없었죠. 무엇보다 묵혀 온 쌓아둔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어요.


  ‘나는 무던하고 멘탈이 강해. 낙천적이지는 않아도 긍정적이야.'라고 자만한 것이 또 화근이었어요. 바닥을 치고 올라오지 않고, 한동안 바닥을 기었습니다. 삐딱선을 일부러 타기도 했어요.


  이듬해 봄, 반복되는 감정의 근원을 알아내 이를 박멸하려 부단히 저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상을 향해 우뚝 올라섰다 순간 아래로 떨어지고 뚜벅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금세 멈추거나 뒤로 물러섰습니다.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어요. 그때 '무료 코칭받고 싶은 분 구합니다.'라는 글을 우연히 발견했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구구절절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운 좋게 코칭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포(Rapport) 형성을 위한 식사 이후, 우리는 시원한 봄 저녁 공기를 느끼며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구석 조용한 정자에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둘만 남겨진 듯한 공간, 훤히 공개되어 있지만 은밀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간 고민과 불만을 꺼내 놓았습니다. 누구를 이해시키려는 의도도,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도 없었기에, 쏟아낸 문장은 거침이 없었고 세련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말을 했는지 다 기억나지 않고 굳이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지질한 모습이라), 지금까지도 생생한 장면들이 있어요.


   '코치님이 다가와 앉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모습, 말 한마디 한 마디 놓치지 않고 정성스레 반응하는 모습, 가로등 빛을 뚫고 일어나 팔을 양 쪽으로 뻗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수용(Acceptance), 칭찬으로 계속 자극을 주셨어요.


    그 날 이후 본격적으로 코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하고 책을 읽고 셀프 코칭을 시작했어요. 회사에서의 어려움을 가족을 통해 풀어가면서 조금씩 업무 열정을 되찾았고,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묵혀 왔던 제 (못난, 하지만 자연스러웠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큰 결정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인사팀 내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인가, 직무를 바꿔 사우디아라비아 주재원으로 갈 것인가?' 쉽지 않았어요. 직장인으로서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기득권과 편안함, 어느 정도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며칠을 밤새 뒤척이며 고민하다, SNS에서만 뵙던 한 코치님께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코치님 안녕하세요. (중략) 커리어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고견 구해도 될지 여쭙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오늘 하루 종일 그룹코칭인데, 끝나고 저녁때 의견 나눌까요? 저녁 8시 30분쯤 어떠세요?"


   12월 9일로 기억합니다. 한 시간 통화 후 마침내 결심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기로.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으세요(Being)?, 무엇을 하고 살고 싶으세요(Doing)?"

   "이번 결정을 통해 향후 4~5년 간 가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으실까요?"

   "인사보다 다른 일에 끌릴 수 있고요,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인사는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지만, 지금 기회는 다시 잡기 힘들 수 있습니다."

   "인사업무만 하는 것보다 다른 업무와 경험을 하는 것이 비즈니스 코치로서 더 좋을 수 있어요."

   "이야기 나눈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오늘 어떠셨어요?"


   코칭과 티칭을 함께 해 주셨지요.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도록, 무엇보다 가슴이 이끄는(from deep inside) 결정을 할 수 있게 용기(Fearlessness)를 주셨습니다. (통화 하기 전에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결정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두 코치님 덕분에 작년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해외로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 코칭을 만나, 인생 후반전 흥분되는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깊이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은 인생에서 코칭을 절대 놓지지 않을 겁니다. 무얼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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