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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록 Nov 30. 2020

노란 리본과 금색 배지

어느 변호사와 송경동의 시

2008년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집회하다 경찰이 퇴로를 열어주지 않는 바람에 같이 있던 선후배 몇몇과 구로서로 연행됐다. 피의자 경험은 처음이었다. 버려진 풍선간판처럼 형사과 사무실에 멍하니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함이 오갔다. 얼마 뒤 검은색 모직코트를 입은 웬 남자 하나가 서류 가방을 든 채 불쑥 들어와서는, 사무실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는 연행된 이들을 붙잡고 뭐라 뭐라 정신없이 설명했다. 형사가 이렇게 물어보면 저렇게 대답해라,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데 열성이었다. 누구길래 저러지, 가만히 쳐다봤다. 자신은 민변에서 나온 변호사이니, 도울 게 있다면 돕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명함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명함 뒷면에는 ‘연행 시 대응수칙’이 적혀 있었다. 나는 명함을 받지 못했다. 이제 명함이 떨어졌다고 했다. 사무실을 나가려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벌금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는 다급하게 쪽지에다 번호를 적어 주었다. 정식재판 청구할 거면 여기로 연락해 주세요. 민변 사무실 직통번호였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헐레벌떡 나갔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받아 둔 쪽지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2박 3일 유치장 생활을 끝내고 자취방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그때 입었던 옷가지를 그대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보름쯤 지났을까, 벌금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그 쪽지가 생각났다. 얼른 바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쪽지는 이미 분해되어 있었다. 아쉬운 대로 민변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민변에선 필요서류를 보내주면 변호사를 배정해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만난 그가 떠올랐지만, 누군지 알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민변의 도움으로 같이 연행됐던 후배들과 정식재판을 신청했고, 6년 만에 공소 취소 결정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으나 알 길은 없었다.


14년 비극이 터졌을 때 유튜브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그는 유가족을 보듬고,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울었다. 여전히 경황없어 보였다. 저 사람 아직도 저러고 있구나. 그제야 그의 이름이 '박주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뒤에도 종종 TV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잘 차려입은 정장의 왼쪽 라펠에 노란 리본과 금색 배지를 달고 나오기도 했다. 노란 리본과 금색 배지. 그 두 가지가 같은 값일 수 있는지, 같은 위치에 걸려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_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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