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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 인 Jan 06. 2021

|지인의 서평| 마음 챙김의 시

소소한 서평이야기



* 이 글에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 챙김의 시 / 류시화 엮음


 남들 다 겪는 스물아홉, 서른의 문턱에 이제 다다르면서 가장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된 한 해였다. 그래서 이 책과 서평을 빌어 그동안의 내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이 책을 원장님께서 건네 주실 때 단번에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조금은 내심 슬펐다. 올해 내가 어른들, 인생 선배들에게 들은 피드백 중에서 일관된 이야기가 감성의 결여, 너의 글에서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점점 그런 말을 들어갈수록 내 자신과 주변에 대해서 돌아보고 꽤나 힘든 좌절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에서 나를 꺼내준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사람들이었다. 나를 놓지않고 나의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주며 응원해주는 사람들. 어찌 보면 스무살이 되고,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홀로 살아남은 나는 감성을 타령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20대에 많은 변화와 경험을 했고 숫자로 계산되고, 돈으로 값어치가 매겨지는 사회에서 살아보겠다며 버티다보니 마치 타인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노력만 죽어라 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두번째 대학인 예대를 다닐 무렵 좋은 스승을 만났고, 운좋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 내가 이 젊음을 어떻게 건강하게 써야하는 것인지, 청춘을 가치있게 보내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게됐다. 그 끼많고 잘난 아이들 속에서도 나만의 5%가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할 때, 동기들이 말해준 나의 가장 큰 키워드는 용기와 아이러니하게도 감성이었다. 나는 왜 감성을 잃었을까. 아마도 원장님께서 내게 책을 건네며 보내는 메세지가 지금의 나에게 주는 또 다른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은 세상이 둥글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끔씩 세상이 모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저기 모서리에 부딪쳐

자잘한 상처를 너무 많이 입으니까.

하지만 내가 세상을 여행하면서 발견한

인생의 중요한 진실 하나는

정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


엘라 휠러 윌콕스의 <인생의 흉터들> 중에서





 남의 암보다 나의 감기가 더 아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제껏 나는 내가 받은 상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좋은 얘기는 잘 안하려고 하지만 내게도 큰 상처들이 많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나를 넘어뜨리고 끌어내릴 때마다 계속 일어섰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 그 안에는 열기 싫어 외면하는 어두운 방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헤엄쳐 나오지 못할 만큼 깊은 우울의 호수 속에 빠져있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바로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력없이 내게 주어지는 것이 많지않았기에 인생은 힘든 것이고, 노력이라는 대가가 있어야만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겪어온 나의 인생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또한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내 상처가 크다고 남을 무시하지않고,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 노력들을 알아주고,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인생은 조금 더 따뜻하고 평온하다. 20대에 내가 가장 잘 한 것은 나를 많은 변화 속에 내던지고 그 결과가 실패든, 조롱거리든 늘 용기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진정한 깊은 관계를 잘 맺어온 것들인 것 같다. 가장 못한 것은 이제 앞으로의 내가 풀어갈 숙제인데 너무 세상을 염세적으로 비관적으로만 바라본 것,  타인에게 너무 엄격하려 했던 것, 감정을 숨겨 평정심을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한 것 등이다. 수많은 시간동안 고민해왔는데 글자 몇자로 정리되는 나의 시간들이 허탈한 걸 보니 역시 너무 긴장해 살아온 것 같아 지금은 숨통이 좀 트인다.




무엇인가를 시도할 계획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렇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


중략


끝까지 가라.

이것은 3일이나 4일 동안

먹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추위에 떨 수도 있고

감옥에 갇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당하고

고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립은 선물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네가 얼마나 진정으로

그것을 하길 원하는가에 대한

인내력 시험일 뿐.

너는 그것을 할 것이다.


만약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것만 한 기분은 없다.

너는 혼자이지만 신들고 함께할 것이고,

밤은 불처럼 타오를 것이다.


하고, 하고, 하라.


너는 마침내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니,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싸움이다.


찰스 부코스키 <끝까지 가라> 중에서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책의 말미에서 그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말을 지극히 공감하고, 또 좋아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런 순간을 많이 경험한 것 같다. 그래서 하루하루,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또 앞으로 내가 벅찬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까 기대반, 걱정반의 마음이 든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내가 나를 단단히 만들어온 만큼 나에게 영양분을 주고, 사랑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며 살아갈 일인 것 같다. 감상주의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것은 내게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다. 지나간 소중한 인연에게 새로운 안녕을 빌어 서로 응원의 말도 건넸고, 자주는 못보더라도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올해 마지막으로 가장 잘한 일 같다.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늘 나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내게 닿은 인연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가 만나면 좋은 향기가 날 수 있도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뭐든 끝까지 하고야 말겠다. 아자아자!




2020년 12월 3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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