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피자, 마피아... 그리고 「대부 」
미국엔 다양한 학술지가 있는데 그중 Italian Americana가 있다. 1974년에 발간을 시작해서 1년에 두 번 발행되는 이탈리아에 초점을 맞춘 전문 학술지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역사나 문학, 자서전 등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 논문을 주로 싣는다. 이 잡지가 이탈리아 출신의 저명인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국 이민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게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단 한 명 만 손꼽는다면 그것은 누구일까?
미국의 작가 게이 탈레스(Gay Talese)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를 첫 손에 손꼽았다. 원조 아이돌 가수이자 영화배우이다. 그가 부른 「My Way」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도 유명하다. 시나트라는 영화 「조커」의 OST곡인 「That’s Life」와 「Send in the Clowns」를 불러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어찌 보면 시나트라의 삶도 조커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마피아와 폭력세계를 보며 컸기 때문이다.
지난 백 년간 미국에서 이탈리아계 출신 중에 꽤 많은 인재들이 출현했다. 요즘 미국의 뉴욕시는 코로나 19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현재 뉴욕주지사가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이다. 코로나 대처를 잘 해서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52대 뉴욕주지사를 지냈고 막내 동생은 CNN 앵커이다. 이런 정치 분야에서 쿠오모 이전엔 코네티컷 최초의 여성 주지사였던 엘라 그라소(Ella Grasso)와 부통령 후보까지 올랐던 정치인 제럴딘 페라로(Geraldine Ferraro)가 있다.
7명의 추천인들이 손꼽는 인재들은 여러 분야에서 나왔다. 과학분야에는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와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가 있다. 파우치는 미국 최고의 전염병 전문가로 백악관에서 코로나 수습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페르미는 물리학자로 세계 최초로 핵반응로를 개발하여 원자폭탄의 설계자로 불린다. 그는 과학지식의 우수함을 통해 무솔리니로 인해 생긴 이탈리아계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을 떨쳐 내려 애썼다.
추천된 인물 중엔 존 치아디(John Ciardi)라는 시인도 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하고 있는 일이 바로 우리 자신을 나타낸다”는 그의 말은 알려져 있지만 한국 독자는그가 매카시즘에 맞서 싸운 시인이었다는 배경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다. 이런 점에선 성녀 카브리니(Mother Cabrini)도 비슷하다. 그녀는 평생을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하며 살았는데 미디어 시대인 지금 태어났다면 아마 마더 테레사만큼 유명해졌을 것이다.
미국의 영화 PD인 토마스 비탈레(Thomas Vitale)는 「대부」를 쓴 마리오 푸조(Mario Puzo)를 손꼽았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영화 「대부」에서도 그렸듯이 유럽의 이민자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 내에서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중국 하면 차이나타운이고 베트남은 쌀국수 한국은 세탁소 아니면 도넛이듯, 이탈리아도 주 종목이 있었는데 피자와 스파게티, 그리고 마피아다.
다른 추천자들이 추천한 사람 중엔 비즈니스 분야에선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가 있었고 교육 분야에선 피터 삼바르티노(Peter Sammartino) 총장이 있다. 삼바르티노는 페어레이 디킨스 대학교를 세웠는데 이 대학은 경희대학교가 최초로 자매결연 한 미국의 대학이기도 하다. 음악 분야에선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도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부」에 가깝다. 한국인 역시 이탈리아하면 축구, 페라리, 마피아를 연상할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WASP)가 쥐고 있다. 이탈리아계도 겉으로는 백인으로 보이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의 머릿속엔 「대부」나 마피아에 연결된 이미지가 강한 듯하다. 마리오 푸조는 소설 대부를 씀으로써 미국인들이 가진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한참 전에 나온 미드 「소프라노스」, 「미키 블루 아이즈」, 「썸머 오브 샘」, 「애널라이지 디스」가 다시 확인해준다.
미국 문학을 전공한 탓에 미국 소설과 시와 문화를 열심히 읽지만 그 미국적인 것이 늘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여서 용광로를 뜻하는 ‘멜팅 팟’(melting pot)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우리는 하나”라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전쟁영화에선 애국심을 호소하지만, 중요한 순간엔 언제나 WASP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앵글로색슨이 여전히 주류인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아직 주류는 아니지만 주류로 들어가려고 애쓴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이미지가 BTS나 「기생충」 혹은 코로나 19로 바뀌고 있듯이, 이탈리아에 대한 이미지도 수시로 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탈리아 하면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로마, 콜로세움, 피사의 사탑 같은 문화유산으로 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절반이 넘는다. 그 뒤를 큰 격차를 두고 피자와 스파게티(2위)와 패션(3위)이 등장한다. 남자라면 페라리나 축구를 떠올리겠지만 다수는 이탈리아의 역사나 문화에 매력을 느낀다. 이것이 이미지를 빚어낸다.
문학을 읽다 보면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자투리 지식이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 배우려고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다가 빨간 우체통을 발명한 사람이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소설가 앤서니 트롤로프(Anthony Trollope)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문학사에선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독특한 소설 『변신』을 읽다가 작가 카프카(Kafka)가 건설현장에서 쓰는 안전모를 발명한 것을 알고 ‘와’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탈리아에 관한 지식도 예외가 아니다. 고전 리스트 단골손님인 단테의 『신곡』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있는데, 예전에 신곡을 열심히 읽었다. 읽다 보니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가 단테가 좋아했던 소녀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베로니카 로스가 쓴 소설 다이버전트 시리즈의 여주인공 이름이 비어트리스 프라이어(Beatrice Prior)다. ‘비어트리스’를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하면 ‘베아트리체’가 된다.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결국엔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건축물, 음악, 물리학자, 문학, 패션, 음식, 정치 같은 카테고리로 세분되지만 이것들은 모두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책을 계속 읽도록 만들려면 이야기는 흥미로워야 하는데 그것을 마리오 푸조가 가장 잘 해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이탈리아하면 피자나 마피아를 떠올리는데 이 둘은 모두 「대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