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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현재 May 16. 2020

감각의 돌려막기

감각의 극대화

  무서운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소름끼칠 정도의 자학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그것은 바로 결정적인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것이다. 대개 공포는 ‘소리’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눈을 가리는 행위는 공포를 배가 시키는 일이 된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혼자서는 공포영화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포를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서 눈을 가리는 것일까. 이처럼 대담한 사람들이 어디 있나. 그런 사람들은 3대 공포 테마 방탈출에서 탱커로서는 든든할지 모르지만. 친구로서는 조금 섬뜩할 것 같다.


  우리는 무언가를 지각할 때 오감을 모두 활용한다. 각각의 감각이 모두 특성이 있겠지만, 눈은 거리감이 있어 공포와 직결되는 감각은 아니다. 반면 귀는 ‘지금, 여기’에서 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섬뜩함을 주기에 안성맞춤인 감각이다. 그래서 모든 공포영화들은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에 온 신경을 쏟는다. 귀신이나 괴물이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산한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라는 영화는 조금 특이하게 배경음악이 거의 없다. 물론 주인공들도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음성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보통 괴물이 등장하거나, 으스스한 곳으로 주인공이 다가갈 때, ‘빠~밤, 빠~밤’이런 배경음악을 까는데, 그런 것도 없다. 1시간만 있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병동의 독방처럼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더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오디오가 빈 느낌이 들어 TV 소리가 작나하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모든 소음을 차단한 채,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그리고 온 감각을 집중해 영화를 보았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소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를 소름끼치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감각이다. 뒤에서 조용히 몰래 다가와 귀에 바람을 넣는다거나,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소름끼치는 이유도 청각이라는 감각 너무 나와 가까이 있는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너무 소리가 없어서 온 감각이 청각에 집중되고, 감각이 극대화된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도 감독은 극도로 소리를 차단시켜 놓았는데, 이 때문에 청각을 통한 우리의 공포는 더욱 증대된다.


  게다가 괴물이 자주 나타나지 않고, 잘 보이지 않게 한 설정도 우리들을 오싹하게 만든다. 특히 물 속 어딘가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그런 설정은 정말 섬뜩하다. 괴물과 주인공이 마주하는 장면이 한 번 정도 나오는데, 이렇게 괴물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앞서 무서운 장면에서 눈을 가리면 공포가 배가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는데, 그 중 하나가 차단되면, 다른 것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각 장애인의 다른 감각들은 극도록 발달해 있다. 더군다나 시각을 차단해버리면, 상상력이 작동해 공포는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이런 메커니즘을 잘 활용해야 공포영화는 성공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점에서 매우 훌륭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블라인드 소개팅이라는 설정은 매우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시각을 차단한 채 음성만 주고받는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지고 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눈보다 귀가 더 가까우니까. 그리고 목소리, 그리고 피부결만으로 상대방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창의력은 활발하게 작동하고 예쁜 판타지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것이 실제와는 거리가 먼 왜곡과 오류라 할지라도 무슨 상관인가. 사랑에 빠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서 이처럼 ‘소리’라는 것을 공포가 아닌 묘한 '사랑의 기운'으로 예쁘게 옮겨 담을 수도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감각은 이처럼 동시에복합적으로 작용한다그리고 어느 하나가 차단되면 다른 것들이 극대화되고그것을 채우기 위해 상상력이 작동한다좋은 영화는 이러한 감각의 차단과 증대, 즉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돌려막는 것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그것이 공포든사랑이든 상관없다그게 무엇이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들의 감정을 흔들어 놓을 수만 있다면 좋은 영화인 것 아닐까.


ps. 그리고 공포영화를 볼 땐, 눈 말고 귀를 막자^^


공포영화 눈가리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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