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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Aug 23. 2023

당신에게 인구학은 무엇일까요?

매거진을 시작하며

창작자로서의 연구자가 되기 위한 여정


브런치에 적지 않은 수의 글을 쓰면서 '본업'과 관련된 글을 쓰는 일에는 유독 게을렀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 써야 하는 4편의 논문과 학위 논문 Introduction (스웨덴에서는 이 도입부를 Kappa라고 부른다)을 제대로 쓰기에도 버거운데, 학교 밖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있는 연구와 관련된 주제로 머리를 쥐어짜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오랫동안 했었다. 하지만 불현듯 연구자는 결국 창작자가 되어야 함을 깨닫고, 저널 논문이라는, 극히 제한된 방식의 창작에만 매달리다 보면 창작에 대한 열정도, 애정도 식어버려서 결국 연구자로서의 삶을 영위할 동력도 잃어버리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내가 공부하는 분야를 조금 더 '포괄적으로' 좋아해 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내가 하는 공부에 관해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해외에서 조금 더 경력을 쌓더라도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과학에는 현실적으로 국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5년 남짓한 유학 생활 후 내가 내린 잠재적 결론이고, 똑같은 연구 성과가 이왕이면 내가 익숙한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이 나의 직업적 욕심임을 깨달았기에, 나는 장기적으로는 '잘 배워서 한국에서 쓰는' 경로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국문으로 저널 논문을 쓰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 필요한 연습일 텐데, 지금 내 현실에서는 이것이 마냥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조각글 형식의 상대적으로 짧고, 그러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전공 관련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은 좀 더 현실성 있는 목표가 될 것이다. 


학제적인, 혹은 잡다한 인구학


다행히도 나의 전공인 (사회) 인구학은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좋은 분야이다. 인구학은 아주 쉽게 말하면 인간 집단의 생로병사와 이동을 다루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다. 따라서 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가 나오고, 모든 사람들이 (예컨대 노화와 죽음),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출산, 이민) 직접 경험하는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이야기만 잘 풀어나간다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인구학은 태생이 학제적인 분야이기에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와 접점이 많고, 연구자들도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서 훈련받은 경우가 많다. 인구학자들은 대부분 다른 학과에서 더부살이를 한다. 인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 몇 개를 제외하면 인구학자들은 사회학과, 경제학과, 역사학과, 지리학과, 통계학과, 보건학 (역학)과 등 다양한 학과 혹은 연구 기관에 속해 있으며, 인구학자들이 자주 가는 학회를 봐도 이처럼 소속이 다양한 학회는 최소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필자처럼 인구학을 박사과정으로 전공하는 사람도 꽤 학제적인 트레이닝을 받는 일이 흔하다. 


예시를 하나 들자면, 필자의 경우에도 논문 슈퍼바이저가 3명인데 세 명 모두 다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필자가 일하는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에 속한 인구학 분과는 사실 사회학 전공자보다 다른 전공을 가진 구성원의 수가 훨씬 많다. 특정 전공, 혹은 특정 학교가 뚜렷한 주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고 섞여 있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 덕분에 사람들이 진정성 있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시너지를 찾기 위해 토론에 임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며, 나도 그 분위기 속에서 배운 점이 많다. 


한국 인구학 담론의 지형?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인구학 관련 이야기를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산이라기보다는 내가 설득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큰 부분은 한국의 '인구위기' 담론이 지배적이며, 초저출산, 초고령사회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과장을 좀 보태면 '종말론적인 위기감'을 불러오고, 따라서 사람들이 인구학자들에게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인구위기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구학을 저출산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치환하면 곤란하다. 출산 (fertility)는 인구학의 3대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초저출산 초고령사회'라는 단어 속에도 이미 출산과 또 다른 제2의 주제인 노화 혹은 죽음 (population ageing, 그리고 death 혹은 mortality)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데 두 문제는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묘하게 분리되어 논의되는 느낌이다.


더불어,  제3의 주제인 이주 (migration)라는 주제는 '어설프게'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다가 반이민 정서의 역풍을 맞기도 하는데, 이 역시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첫째로, 국경을 넘는 이주 이외에도 국경 내에서 이동하는 이주 (internal migration)도 이주이며,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의 이주 행위는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둘째로, 대한민국의 국제 이민 흐름과 상주하는 국내 이주민의 수 (immigrant)는 분명 증가했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해외로 유학 가는 것마저 쉽지 않았던 부모님 세대와 비교할 때 우리 세대는 해외로 단기 혹은 장기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 (emigrant)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대인 만큼 그들의 이주 동기와 이주 후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이탈주민과 같은 다소 특수한 형태의 이주민 집단도 존재하기에 사실 본격적으로 판을 깔면 이주에 관해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다.  


다른 산은 당장 한국 사회가 직면한 급격한 인구 변화가 너무 눈에 띄다 보니, 인구학 관련 담론이 해외의 인구학적 변화를 연구하는데 소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개별 연구자들이 소홀하기보다는 인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의 수가 적은 문제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국적, 혹은 한국 배경의 인구학자들도 많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국내에 얼마나 원활하게 유통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유럽 인구학자들은 유럽에만 주로 관심이 있고, 미국 인구학자들은 당연히 미국적 현상에 훨씬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구학 분야의 이름 있는 학교 혹은 연구 기관들은 다른 나라의 인구문제, 혹은 기후변화나 전쟁으로 인한 초국가적 인구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인구학을 향한 관심이 때로는 국경을 초월해 조금 더 넓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 밝히자면 필자는 사회인구학을 공부하며 넓게 보면 이주 분야를 공부하고, 이주민 1세대보다는 그들의 자손인 2세대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출산과 사망은 필자의 주력 분야도 아니다. 보수적인 인구학자들은 내 정체성에 장난스럽게 (하지만 꽤 진지하게) 의문을 던지기도 하다. 나는 농담 삼아 나의 정체성 위기는 은퇴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받아친다. 학사, 석사, 박사 (순조롭게 졸업할 수 있다면)를 서로 다른 학교에서 다른 전공으로 공부한 나는 인구학의 큰 흐름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좋게 말하면 학제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잡스러운 여정을 걸어왔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


매거진에는 한국의 저출산 위기에 대한 심층분석이나, 필자가 생각하는 출산율 (fertility rate)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있는 방법에 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 대신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 예컨대 포괄적인 육아의 사회적 분담과 노동 시장에서의 젠더 평등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고 꾸준히 추구해 온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이 10년째 계속 떨어지다가, 2023년에 스웨덴 통계청이 통계를 이후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이 보고된 일이나, 인구학 연구자들이 중국에서 이촌향도를 겪은 젊은이들의 젠더 평등에 관심을 가지는지 등의 이야기를 자주 풀어놓을 것이다. 당연히 필자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사실 첫 번째 연구 문제는 내 고용 시간의 20퍼센트를 잡아먹는 연구 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보기 드물 정도로 다양한 구성원이 있는 학과의 특성을 장점 삼아서 때로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연구 성과를 읽어보며, 학회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되짚어가면서 노력해보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적당한 기회가 오면 다룰 생각이다. 한국의 현상에만 한정하지 않은 까닭은, 한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기울일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존재이자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 사회에서 사이에서 유사한 인구학적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거나 시간차를 두고 되풀이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자주 쓰는 용어, 혹은 오해하기 쉬운 인구학적 개념을 다루는 글도 있을 예정이다.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다. 예컨대, 이민과 난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부정확한 일이지만, 사회적, 정책적 함의가 분명한 오류이다. 난민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이민자에게 관대한 나라도 있으며, 난민에 대한 적대감이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번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하려면 둘이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글은 초반에 매거진의 방향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몇 개의 글을 제외하고는 2주에 한 개 정도를 목표로 연재하려고 한다. 연구와 강의 스케줄 때문에 지난 3년간 가을이 가장 바빴던 필자가 격주로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만만하지 않은 도전이 되겠지만,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이 약속을 잘 지켰다고 뿌듯하게 웃을 수 있기를. 


커버 이미지: Photo by Scott Eva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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