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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Aug 29. 2023

인구학자들이 생각하는 인구학

인구학자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 인구학의 대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혹은 모두가 경험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인구학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구학은 어떤 학문일까? 만약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필자에게 인구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없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구학은 인간 집단의 생로병사와 이주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생로병사라는 말속에 인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두 가지 주제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를 한 개인이 겪는 일로 해석하자면 '생'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한 면이 있다. 인구학에서 출산(fertility)을 연구한다고 하면 주로 성인이 다음 세대를 낳을 결정을 하는 것과 관련된 연구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생'으로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 생로병사라는 표현은 출산과 사망의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여기에 완전히 빠진 것은 이주인데, 공교롭게도 인구학 방법론 책을 봐도 가장 나중에 다루어지고, 출산이나 사망에 비해 방법론이 엄밀하게 정립되었다고 하기 어려운 분야가 이주(migration)이다. 그래서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출산이나 사망 관련 연구는 전혀 하지 않고, 이주와 관련된 연구만 하면서 스스로를 이주학자 (migration researcher)라고 이야기하는 넓은 의미의 인구학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엄밀한 정의는 없을까?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이자 가장 수준이 높은 인구학 연구를 다루는 연구소라고 손꼽을 수 있는 막스플랑크 인구학 연구소에서는 인구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Demography is the science of populations. Demographers seek to understand population dynamics by investigating three main demographic processes: birth, migration, and aging (including death)

인구학은 인구 집단에 대한 과학입니다. 인구학자들은 출산/출생, 이주, 그리고 노화 (사망을 포함한)라는 세 가지의 주요 인구학적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인구동태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What is Demography?] 원문 링크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가 들어갔지만 뭔가 건조한 설명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ChatGPT 무료 버전에게 인구학이 무엇인지 (What is Demography)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Demography is the scientific study of populations, including their composition, distribution, growth, and trends over time. It involves analyzing various demographic factors that characterize populations, such as age, gender, race, ethnicity, fertility, mortality, migration, and socioeconomic status. Demographers use statistical and mathematical methods to examine how these factors interact and change within a specific geographic area or across different regions.

대체로 맞는 내용이기는 한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구학자들이 주된 연구 대상으로 생각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나열했다는 점이다. 물론 무엇이 주된 연구 대상이고, 무엇이 부수적인 연구 대상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학문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구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중요성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혼이나 이혼과 관련된 주제 (marriage, divorce, 인구학에서는 nuptiality라는 좀 더 예스러운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자주 쓰지 않는 단어인데, 혼인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가 열거되지 않은 것도 놀랄 만한 일이다. 


출산, 사망, 이주가 주된 주제라고 했는데 왜 오늘날 인구학자들이 다루는 주제가 이토록 다양한지 묻는다면 필자는 핵심 연구 주제에서 시작해서 가지치기를 한 결과라고 설명할 것이다. 예컨대, 출산과 관련된 연구를 하다 보니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 그리고 파트너끼리 같이 가족을 구성하는 행위, 혹은 가족 형성 (family formation)을 연구할 수밖에 없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어떻게 양육하는지에 연구하는 학자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주를 연구하다 보니, 이주 이후에 이주민들의 삶이 어떤지 이주민들의 '적응'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등장했고, 나아가 이주민의 후손들 (일부 문헌에서는 그들을 2세대, 3세대 등으로 특정해 부르기도 한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이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노화와 죽음이라는 현상을 연구하다 보니 노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원인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주제를 다루기만 하면 모두 인구학의 범주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인구학의 외연적 확장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모든 사회과학은 스스로가 모든 사회과학의 허브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를 두고 '제국주의적 확장'이라고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인구학은 경제학이나 사회학에 비해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고 규모가 작다 보니 '인구학의 제국주의적 확장'을 꿈꾸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것보다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설명은 위에서 이야기한 인구학적 현상 (출산, 사망, 이주 등)들을 주로 다루는 연구가 인구학적 연구라는 설명이다. 인구학자 대부분이 양적 방법론에 의존하는 현실을 고려하자면 인구학적 과정이 원인이나 결과, 혹은 주요 매개변인이나 조절변인으로 작용하는 연구가 인구학적 연구라는 주장에 필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구학을 양적 방법론에 국한할 수는 없다. ChatGPT는 인구학자들이 통계적 혹은 수리적 방법론을 사용한다고 설명했고, 현실에서 이는 90% 정도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질적 연구 방법론을 통해 연구를 하는 인구학자들, 혹은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을 모두 사용하는 연구 (mixed methods)를 진행하는 연구자도 존재한다. 어떤 연구 방법론도 자체로 완벽할 수는 없기에 인구학에서 질적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은 비중이 작다고 할지라도 무시할 없는 지분을 차지한다고 있다.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보자. 누가 인구학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인구학 연구를 하면 인구학자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인구학자들만 인구학적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인구학자들이 사회학과, 경제학과, 역사학과, 지리학과 등 다양한 학과에 분포하듯이, 해당 학과에서 인구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이 인구학 연구를 하고, 인구학 연구를 주로 다루는 저널이나 학회에 연구를 발표하며 다른 인구학자들과 교류한다. 그중에서는 본인을 인구학자라고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필자는 스스로가 그렇게 정의한다면 그것을 존중하고자 하는 편이다. 


인구학 관련 저널 랭킹 훑어보기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좋은 예시는 인구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저널들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이다. 위의 링크는 몇 가지 정량적 지표를 토대로 분야별 저널 랭킹을 보여주는 웹사이트 중 하나인 Scimago에서 사회과학의 세부분야 중 하나로 '인구학(Demography)'을 선택한 결과이다. 혹시 인구학에 학문적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 훑어봐도 좋을 것 같다. 상위 20개 정도의 저널 이름만 살펴봐도 인구학이 다루는 분야가 꽤 다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구학과, 혹은 인구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구학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는데,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인구학과 혹은 인구학 연구소는 다른 사회과학 분과에 비해 찾기 쉽지 않다. 인구학 학위가 있는 사람을 인구학자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인구학과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인구학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학교의 수도 당연히 적다. 예컨대 스톡홀름 대학교는 사회학과에서 '사회인구학' 과정을 공부할 경우 '사회인구학 박사 (PhD in Socialological Demography)' 학위를 수여하는데, 이는 오히려 흔치 않은 경우이고, 스톡홀름 대학교의 인구학 유닛 연구자 중 적지 않은 수가 인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곳에서 인구학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정리하면, 인구학이 학제적인 학문이고, 다루는 분야가 꽤 넓다 보니 누가 '진정한 인구학자'인지 엄격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인구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연구에 임하는 누구라도 스스로를 인구학자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반대할 이유가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좀 더 전문적인 수준의 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각종 인구통계학 방법에 관한 지식을 비롯한 다양한 '자격'이 요구되는 일도 있겠으나, 이는 연구기관이 인구학자를 채용하거나, 엄밀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연구 프로젝트, 예컨대 미래의 출산과 사망 추세를 예측하고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는 연구와 같은 적지 않은 규모의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보다 중요한 일은 인구학이 주로 무엇을 공부하며, 어떤 종류의 현상에 관심을 갖는지 이해하고, 인구학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했을 때 좋은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 예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가 연구자들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길의 시작이다. 


커버 이미지: UN Population 웹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는 2022년의 전 세계 인구 피라미드. 인구 피라미드는 연령별, 성별 인구 집단의 절대적, 상대적 규모를 한눈에 시각화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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