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성 Sep 04. 2023

5년 후를 계획하는 것은 사치일까?

임시로 스톡홀름에 삽니다 3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10년 후에 내가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그 친구는 도저히 이해를 못 하더라고. 하지만 이게 현실인걸. 너도 그렇지 않아? 


8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박사 과정을 시작한 친구와 나눈 대화이다. 그 친구는 사실 나보다 나이가 좀 더 많다. 그래서 아마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던 '친구의 친구'는 이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가정도 꾸렸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석사 때 조금 먼 거리에서 봤던 기간을 포함해 지난 5년간 지켜본 바로는, 10년은 고사하고 5년 후를 예측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것이 박사과정 학생의 삶이다. 박사를 마무리하고 학계에 남을지, 아니면 학계가 아닌 곳에서 자리를 잡을 지도 불투명하고, 한 가지 길을 택한다고 할지라도 언제 이직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의 그림자조차 사라진 오늘날의 노동시장에서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학계의 특수성을 굳이 꼽자면 채용시장이 '글로벌한' 만큼, 나의 미래 직장도 어디에 있을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화가 오가기 오래전부터 또래 친구들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인생 계획을 세우거나 이직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을 보면서 왜 나는 그런 삶을 살기 어렵다고 믿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25살 이전까지는 한국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여권도 없었던 내가 이렇게 여기저기를 떠도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 물었다.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대답 같지만 결국은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는 잠정적 결론이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면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가 때로는 아예 다른 나라에서 쭉 살고 있는 친구나 먼 친척이 있기 마련인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환학생을 하겠다고 처음 한국을 떠났을 때는 '죽기 전에 두 번 가기는 어려울만한 그런 낯선 곳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스웨덴을 선택했지만, 한 번의 출국은 두 번째 출국 결정을 훨씬 쉽게 만들었고, 두 번째 출국 결정은 석사를 마친 다음에도 해외에서 최소 4년 이상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박사 과정 진학 결정을 쉽게 만들었다. 이후 4년에서 5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다소 안일한 마음으로 장기 체류를 결정했다. 


이제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기에는 좀 더 나이가 들고, 좀 더 철이 들어버렸는데 박사 진학 결정을 내린 3년 전보다 훨씬 미래가 불확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다시 한국에 들어가겠다는 장기 플랜을 세우긴 했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졸업하기 전에 한두 번 더 한국을 찾아가고, 큰 학회에서 네트워킹을 하겠다고 진땀을 빼면서 답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면 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본격적으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학계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박사 줄업 후에도 여러 곳을 떠도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금은 5년 후를 계획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이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계획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20년 9월에 박사 과정을 시작한 후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박사 과정을 마치고 자기 갈 길을 갔지만, 최근 1년 이내에 졸업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졸업 후 첫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거나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치 8월의 마지막 같은 9월의 첫 번째 주말 저녁 시간이 흘러가고 감정이 복잡하더라고 생각이 명료해야 하는 2023년의 36번째 주가 문 앞까지 다가왔다. 


커버 이미지: 스톡홀름 대학교와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앞. 사진을 찍었던 8월 31일, 한 명의 사회학 박사가 탄생했고, 나는 또 한 명의 좋은 동료에게 작별을 고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누스 (Janus) 혹은 페르소나 게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